사람 사주 보는 것 중에 살 있잖아. 살(煞). 내가 심심풀이로 해본 적 있는데 지살도 있고 역마살도 있는거야. 궁금해서 검색을 해봤어. 해봤는데. 둘 다 표류하는 살이래. 떠도는 살인데. 역마살은 들개고 지살은 들고양이래. 무슨 말이냐면, 역마살은 들개라 어디를 가든 잘 적응하고 낯선 사람하고도 쉽게 친해지는데 지살은 들고양이라 살던 곳을 떠나면 고달픈 신세가 되기 일쑤고 오랫동안 애를 먹게 된다는 거야. 그래서 좀 무서워. 들개면 좋겠는데 들고양이일까봐.
도베이
에어컨이 고장 난 오후였다. 일본에선 <끈기>나 <인내>같은 걸 자라나는 새싹의 필수 조건으로 삼으며 에어컨 설치를 반대하는 노인네들이 시위를 한다더니, 한국은 학생들로 돈 굴리는 요령엔 도가 텄어도 학교 설비엔 영 무관심인 분들이 한 자리씩 해드시는 바람에 에어컨마저 야마가 돌았다. 백현의 자리로 반갑지 않은 햇살이 쏟아졌다. 쌤 더워요. 볼멘 소리에 최 선생이 불퉁하게 대꾸했다. 얘들아. 난 얼마나 덥겠니? 너넨 듣기만 하고 난 말하잖니. 그야말로 불행경쟁이었다.
공부에 큰 뜻이 없는 백현은 작정하고 딴 생각을 시작했다. 이를테면 다음 주로 잡아둔 옆학교 여고와의 미팅(백현은 미팅이란 단어가 정말 후지다고 생각했다.)이라든지, 진짜인가 싶어서 몇 번을 확인한 인스타 여신으로부터의 디엠 같은 것들. 적당히 싼티나고 후끈 달아오르는 만남들. 푹 빠져 사는 것도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등한시 하지도 않았다. 아니근데시발이날씨에미팅을? 만나기도전에 쪄죽을 듯. 아무튼 더위가 문제였다. 퓨즈 나간 에어컨도 문제지만 진짜 문제는 더위 아닌가? 백현이 입을 열었다. 정말 존나 덥다….
“그렇게 더워?”
“…어? 어.”
그렇게 더워? 라니. 자긴 안 덥단 소린가.
“되게 신기하네.”
“뭐가?”
“덥다면서 땀은 안 흘리길래.”
“…”
“그래서 더 더운가.”
경수는 백현의 이마나 뺨 같은 곳을, 쓱 한번 쳐다보고 말았다. 눈동자가 커서 방향이 읽혔다. 남이 땀 흘리는지 안 흘리는지 보는 애도 있나. 그것도 유심히. 백현은 경수가 별스럽다고 생각했다. 짝꿍이 되고 나눈 첫 대화였다.
경수는 모두가 헷갈려 하는 애였다. 먼저 말을 하는 법도 잘 없었지만 먼저 말을 걸기도 어려웠다. 취미가 서열 놀이인 녀석들이 골머리를 앓을 법도 했다. 녀석들이 논외로 두자 왕따도 은따도 아닌, 어설픈 따가 됐다. 그렇다고 경수가 그런 기류를 눈치채고 움츠러들었다거나 갑자기 살갑게 굴었냐 하면은 그것은 또 아니었다. 경수는 나오던 대로 나왔고 가는 대로 갔다. 삼삼오오 모여서 하교하는 애들 중에서 매번 혼자였다. 그 흐름이 너무도 자연스러웠다. 외로운 걸 좋아하는 애 같았다. 멋대로 끼어들 수 없었다.
백현도 논외였지만 경수와는 좀 달라서 어디에 섞여도 분위기를 이끌어갔다. 서열 같은 걸 신경쓰지 않아서 오히려 군림하게 되는 부류였다. 친화력이 좋았고 말솜씨도 나쁘지 않았다. 미팅에 나가면 웃긴애와 인기 있는 애를 동시에 맡았다.(매우 어려운 일이다.) 소문이 난잡할 번도 한데 의외로 그런 면에선 칼 같아서 욕먹는 일도 없었다. 그럼에도 흰 와이셔츠 단추를 두어 개 정도 푸르고 삐딱하게 앉아있는 모습은 영락없는 불량아였다. 그 나잇대의 은근한 불량함은 꼴사납게 보이기 마련이라지만 백현에겐 왠지 잘 어울리는데다가 멋스럽게 느껴지기 까지 했다. 백현도 그 점을 알아서 너 좀 잘나가는 애 같아ㅋㅋ같은 칭찬을 들으면 대충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점점이라곤 없었다. 짝꿍이 다였다. 짝꿍 다음의 단계? 그런 건 교실에 없었다. 그렇지만 백현은 물었다. 확신에 찬 목소리였다. 은지솔미영서고은나영…. 걔들도 다 그랬는데. 나만 계속 흘끔흘끔. 교과서(때로는 학원 책이나 유인물이나 초절정 인기 아이돌의 팜플렛 등등)말고 나만 보던데.
“경수야, 너 나 좋아하지.”
아무튼 돌직구였는데,
“응.”
돌직구가 돌아올 줄은 몰랐고,
“왜?”
이유를 물었는데,
“생각안해봤어…피곤해서.”
의문만 돌아올 줄도, 백현은 몰랐다.
*
백현은 결국 냉동고에 머리를 박았다. 언제 사두었는지 모를 냉면 육수가 돌멩이처럼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먹다 만 아이스크림이 보였는데 아무래도 백희 짓인게 분명했다. 엄마에게 한 소리 듣겠구나 싶은 순간 냉장고 기계음이 울렸다. 삐-삐. 그만 주절거리고 꺼지란 소리였다. 엄마가 냉방병을 심하게 앓은 뒤로 에어컨은 관상용이 됐다. 엄마는 에어컨을 해피트리나 행운목 다루듯 했다. 응달을 살필 필요도 때마다 물 줄 필요도 없는 데다가 크기는 존나게 커서 자랑하기에 썩 괜찮았다. 그래도 백현은 이해가 안 갔다. 시원하려고 샀지 자랑하려고 샀냐. 저렇게 두다간 원금도 회수 못하는 꼴이지. 낭비다, 이거는. 아무말을 늘어 놓는 걸 보니 제대로 더위를 먹은 모양이었다. 살이 접히는 부위마다 땀방울이 맺혔다. 열기는 지치지도 않았다. 백현은 찬물이나 한 번 더 끼얹을까 하다가 고민에 빠졌다. 시발 왜 이렇게 덥지. 밤인데?
열대야는 생각도 안 났다.
삐-삐.
도경수 때문이 아닐까?
누군가 그렇게 속삭이는 것 같기도 했다. 백현은 백희가 남겨둔 서주아이스바를 물었다. 백현보다 6살이나 어리면서 입맛은 벌써 애늙은이였다. 비비빅을 뺏어 먹었다간 사단이 날 게 뻔했다. 흰 부분을 콱 캐물었다. 그런데도 속이 홧홧했다. 갑자기 모든게 고까워진 백현이 다리 사이로 얼굴을 묻었다. 깜깜한 무저갱 속으로 경수의 얼굴이 지나갔다. 피곤해서. 경수가 그렇게 중얼거렸다.
백현은 뭐? 라고 다시 물었고 경수는 피곤해서 대답을 안 했다. <좋아하는 건 맞는데 피곤하다니까>라니, 괴상한 결론이었다. 분명 자길 좋아하는 건 경수인데도 백현이 더 쩔쩔 맸다. 백현에게 거창한 계획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경수가 나 좋아하나보다, 맞지? 까지가 생각의 전부이긴 했다. 경수와는 작년에도 같은 반이었다. 뚜렷한 선호를 드러내는 걸 본 일이 적었다. 하다못해 좋아하는 연예인 같은 것도 들어본 바가 없었다. 아는 거라곤 이름 석 자와 반들거리는 큰 눈동자가 다였다. 그 눈동자가 오래도록 머무는 곳이 백현이었고, 백현 딴에는 찌라고 생각해서 물었다. 먹혀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웬걸. 이건 낚시꾼으로서 직무 유기였다.
“나랑 어떤 사이가 되고 싶다거나 그런 생각은 없고?”
…이딴 후진 멘트를 날릴 줄은 상상도 못했는데. 백현은 부끄러웠다.
“딱히.”
“…딱히?”
“너도 별로일걸.”
자기 PR을 해도 모자랄 판에 자기 별로라고 하는 얼굴이 무심의 극치였다. 하마터면 백현이 변호를 설 뻔했다. 아니야 도경수 너 꽤 괜찮아. 너 잘생겼어. 너 가끔 나 훔쳐보다가 기분 좋아졌는지 펜 흔드는데 좀 귀여워. 너 뭐 물어볼 때 눈 땡그래지거든? 그것도 매력 포인트야.
“너 별로 아닌데.”
“알아.”
“아깐 별로라며.”
“내가 별로란 소리가 아니라, 나랑 사귀게 되면 별로일거라는 거지.”
두 개가 뭐가 다른데?
“두 개가 달라?”
“다르지. 나만 생각하면 너랑 뭐라도 하겠는데. 난 바빠. 힘들고. 내 주변이 그래. 여의치 않다고 해야하나. 버겁다고 해야하나.”
전쟁통에도 애낳고 다 했는데…백현은 차마 그 말까진 못했다. 일단 후져서였고, 그런 멘트를 비빌만한 타이밍이 아니라고 느껴서였다. 교과서 세 개를 쌓아서 베개를 만드는 경수는 정말로 지쳐보였다.
*
풍덕유통. 풍덕시장 A구역 14번 가게. 가게 이름은 전 주인이 지었고 유통이라고 해봤자 여름엔 닭을 팔고 겨울엔 센베이를 파는게 다였다. 망할 일 밖에 안 남은 골목이었다. 가까운 동네에 젊은 예술가들이 어슬렁거리기 시작한 걸 보니 00단길로 불리다가 세 올라서 쫓겨날 게 훤했다. 그래도 할 줄 아는 게 없어서 장사는 계속됐다. 재래시장의 상인들이 다 그렇다지만 경수네는 좀 심했다. 그래도 마지막까지 돈 버는게 먹는 장사라던데 영 돈이 안됐다. 그건 전적으로 경수네 아버지가 호구를 잡히는 스타일이어서 그랬다. 부모가 자식한테만 호구면 됐지 사방으로 호구일 필요가 있나. 원망이 들었다.
-도베이!
A구역의 옆 가게 주인들은 경수를 그렇게 부르곤 했다. 전통과자를 이르는 말인 센베이에 경수의 성을 붙인 별칭이었다. 겨울에 센베이를 주로 파는데 경수가 겨울에 태어났다는 이유였다.(이상한 논리였다.)실은 그냥 종 부리듯 하고 싶은 거란 걸 알았다. 제 집 일꾼처럼 썼다. 명월수산은 그 중 제일이었다. 서민 갑부 어쩌고 하는 프로에 나간 모양이라던데 순 구라쟁이였다. 매일 새벽마다 노량진에 가는게 제일 힘들어요…한눈에 생선을 보실 수 있게 육각형 모양(존나 무슨소리인지)으로 진열을 해두곤 하죠. 저희 집 만의 특별한 비법이 있다고 존나게 자랑하는 체인점 업주를 보는 것 같았다. 웩 소리가 절로 나왔지만 경수는 참았다. 단골 장사인데다가 민심 한 번 잃으면 끝날 장사였다. 민심엔 당연히 주변 상인들도 포함이었다. 경수가 게으름을 피우면 단박에 개소문을 냈다. 없는 살림에도 매출은 끝을 모르고 곤두박칠쳤다. 발 끊긴 가게에서 한숨 쉬는 아빠의 등을 보느니 수산집 허드렛일을 해주는 편이 나았다. 낡은 고물 선풍기가 탈탈 거리며 돌아갔다. 한 숨 돌릴 새도 없이 호출이었다.
“빨랑 빨랑 해야해. 물고기 다 뒤진다.”
“아 네.”
“그래도 얼음 만지는 일이니 시원하지?”
시원할 리가.
너무 차면 손가락이 아팠다. 사방이 아플 일이었다. 아침 댓바람부터 건어물 집의 김 굽는 일을 도와주다가 데인 손가락이었다. 날카로운 얼음에 손가락을 베이는 기분이었다. 물고기가 아니라 제가 뒤지게 생겼는데요. 몇 번이고 생각했다. 그래도 참았다. 호구의 아들이니 마찬가지로 호구가 됐다. 억울했다. 억울했지만, 억울하다고 바뀌는 세상은 아니었다. 수산집 주인은 다음 달로 상인회 회장이 될 예정이었다. 땡볕에서 경수가 구르는 동안 에어컨 돌아가는 상인회 건물에서 전화나 받겠지. 생생정보통에서 취재 나온다는데요. 눈물 찍. 서민도 충분히 잘 살수 있답니다. 여러분. 다른 서민의 고혈을 빨으면 그만이죠. 달마다 걷어가는 상인회비를 횡령하지만 않아도 다행이었다.
“너 그거 다하면 배달 좀 가자.”
“저 오토바이 못타는데요.”
“얌마, 걸어서 갈 수 있는 데야.”
“아, 네.”
걸어서 갈 만한 거리인데 배달을 시킬만큼 지독한 날씨구나. 경수는 거기까지만 생각했다. 더위는 경수를 순하게 만들었다. 어차피 해야할 일에 불만이 붙으면 짜증이 배가 됐다. 경수는 닭 껍질 벗기는 법은 몰랐어도 명월수산의 사정에는 나름 빠삭했다. 포장된 회에 여섯 종류의 소스와 쌈채소, 비빔국수를 챙겼다. 매운탕 재료까지 주문한 걸 보니 거하게 먹을 심산인가 보았다. ‘쌈채소 넉넉하게 주세요!’라고 적힌 쪽지를 보는 데 조금 우울해졌다.
넉넉. 트와이스의 Knock knock 말고, 마음이 넓고 여유가 있음을 이르는 말.
경수는 넉넉하지 못했다. 신세가 그랬고 마음이 그랬다. 그래서 백현이, 정확히는 백현을 상대로 먹은 기꺼운 마음이 귀찮았다. 거세할 에너지조차 부족해서 시선은 자꾸만 백현을 향했다. 교과서를 넘기는 얇은 손가락이나 쉬는 시간이면 터지는 말간 웃음 같은 것을 훔쳐봤다. 몇 번은 들키기도 했다. 들켜도 어쩔 수 없었다. 백현이야 워낙에 좋아하는 애들이 많으니 경수 하나쯤 숟가락을 얹어도 별 탈 없을 것 같았다. 고백 같은 건 생각도 하지 않았다. 좋아서 봤고 그뿐이었다. 쟤라면 호구잡혀도 괜찮을 것 같아. 함부로 생각했다.
백현이 좋아하느냐고 물어서 그렇다고 답했다. 왜냐고 물어보길래 생각 못 해봤다고 답했다. 덜 여물었어도 장사치의 입이라 입바른 말엔 도가 텄는데도 그랬다. 사실 이유는 있었다. 백현이 밝아서 좋았는데 그렇게 얘기하면 스스로가 정말로 ‘안’ 밝은 애처럼 느껴질 것 같았다. 그런 건 좀 서러웠다. 백현아. 어떻게 너를 안 좋아해? 너의 기운을 어떻게 안 사랑할 수가 있어? 자습시간이면 아, 잠온다, 하며 한 팔을 베고 스르르 잠드는 충만한 얼굴을. 가끔 내가 수업시간에 졸 때면 경수, 여기. 하며 나를 챙겨주는 느긋함을. 말 끝마다 접히는 너의 살가운 눈을. 너의 여유와 나른함을. 내가 어떻게 탐내지 않을 수 있어.
얼버무렸다. 피곤하다고. 거짓말은 아니었다. 할 일이 쌓여 있었다. 경수를 부르는 가게가 많았다. 실수라도 했다간 부자가 쌍욕을 듣게 될 테니 정신 바짝 차려야했다. 경수는 포기하며 살아가는 중이었다. 혼자 있는 걸 좋아하는 게 아니라 몰려있는 걸 싫어하는 쪽에 가까웠다. 늘 뭔가가 몰려있어서 그랬다. 일거리든 불행이든.
장사치의 아들은 자라서 장사치가 되고 호구의 아들은 호구가 되고 장사도 못하는 장사치인데다가 몇 년만 지나도 쫄딱 망할 가게를 담보로 살아가는 불쌍한 아저씨의 아들은….
기력이 딸려서 연애도 포기하는 속성 N포 세대가 된답니다. 망할.
“배달이요.”
세상은 경수에게 얄궂었다. 못되게 굴기로 작정한 모양이었다.
“경수 너 여기서 일해?”
합당한 임금을 받아가는 게 일이라면 일 안하는데.
“아, 음. 들어올래? 물 줄까?”
“아니, 바빠. 배달가야해.”
“어? 어.”
배달은 여기가 끝이었다. 경수는 카드 결제기에 카드를 꽂았다. 고물 카드 결제기에서 느리게 영수증이 나왔다. 잘 먹어. 맘에도 없는 말을 했다. 그거 국내산만 취급한다고 하는데 실은 아니야. 밍밍할걸. 쌈채소도 맨날 재탕해. 그러니까 다음부턴 시켜먹지마. 다음부턴 부르지마. 이런 모습 보여주기 싫어.
왜 수치는 참을수가 없지. 맘 놓고 연애놀음 할 처지가 아닌걸 꼭 증명이라도 해야 해? 변백현한테?
경수는 조금 울었다. 수산집 사장님이 얼른 튀어오라며 문자를 보냈다. 와중에 주소를 기억했다. 다시는 걸어오지 않을 생각으로.
*
백현이 풍덕시장을 찾아온 건 그로부터 일주일 후였다.
경수는 물청소를 하고 있었다. 찌꺼기를 씻어 내는데 코가 얼얼했다. 뭔가가 죽어가는 냄새였다. 백현의 얼굴을 봤다. 학교와 학교 애들이 주로 사는 주거단지는 시장과 꽤 멀었다. 마을 버스를 타고 십오분은 와야 시장의 초입이었다. A구역은 그 중에서도 끝단이었다. 경수를 보려고 왔단 소리였다. 싫었다. 경수는 잡일에는 빠삭해도 생선에 대해선 영 몰랐다. 빛깔만 봐도 감이 온다는 사장하고는 달랐다. 그러니 백현이 무엇이 맛있냐고 물어본다 한들 할 말도 없었다. 그래서 존재 자체를 씹었다.
“나 생선 잘 몰라.”
“손 괜찮아?”
지난 일주일간 백현은 뼈가 삭았다. 배달원으로 일하는 경수를 우연히 본 뒤로 경수가 냉랭했다. 경수는 백현을 더 이상 좋아하지 않기로 결심한 듯 보였다. 사귄 적도 없는데 헤어진 기분에 휩싸였다. 왜? 백현은 경수가 그저 알바를 하나 싶었고 다른 애들 피방이나 맥날다닐 때 생선 가게 알바라니 역시 별나구나, 했을 뿐이었다. 회는 맛이 없었다. 경수 잘못은 아니었다. 다신 안 시켜먹어야지, 했다. 그렇게 되니 경수와 부딪힐 일이 없었다. 그렇지만.
떠올리면 머리를 벅벅 긁게 됐다. 포장 비닐을 들고 있는 경수의 손이 새빨갰다. 퉁퉁 부은 손가락이 안쓰러웠다. 집에 들어오라고 하고 싶었고 손 왜그러냐고 하고 싶었다. 겨우 후시딘이 어디 있는지 아는 게 다면서 의사 흉내를 내고 싶었다. 손톱은 뭉툭했는데 규칙적으로 잘라서 다듬어 진 모양이라기 보다는 그냥 경수 말대로 경수 손톱마저 피곤해서 생장을 포기한 것처럼 보였다. 틈만나면 빤히 살폈다. 경수 손은, 성한 날이 없었다. 볼 때마다 덧나 있었다. 생선을 지가 잡는 것도 아닐텐데 왜. 벌써 칼이라도 쓰나.
“도베이! 여기 청소 덜 됐다.”
“잠시만요.”
“여름에는 몸을 더 빨리 굴려야 한다니까. 졸면 바로 생선 버리는 거야.”
명월수산 사장은 ‘졸다’라는 말을 ‘딴 짓하다’라는 말처럼 썼다. 흔히들 지식인을 가리켜 깨어있는 사람이라고 부르니까, 존다는 것은 그 반댓말이고 그래서 멍청하고 동작이 굼뜨고 뭘 모른다는 의미란 거였다. 백현에겐 좀 다르게 들렸다. 잠잘 시간 조차 주치 않고 애를 굴리나 싶었다. 경수의 피곤하다는 말이 생각보다 적나라해서 입이 썼다. 잔뜩 구부린 경수의 등이 가여웠다. 이것조차 알량한 선의라고 생각하니 멋쩍어졌다.
“나 바빠.”
“알아, 바빠보여.”
“안 살거면 가.”
<아파보여> <괜찮아?> <기다릴까?> 셋 중 마땅한 말이 없었다. 비슷한 말도 모조리.
백현은 그냥, 주머니 속에서 후시딘이나 꺼냈다. 밴드도 같이.
“몸 챙기면서 해.”
일주일 동안 생각한 건데 난 네가 아픈 게 싫은 거 같아. 상처 투성이인 손이 마음에 걸려. 되게 많이….
경수는 백현이 주고 간 연고와 밴드를 한참 바라보았다. 약국만 가면 지천으로 널린 물건이었다. 경수가 그걸 못살 정도로 궁핍한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경수는 문득 어리광이 부리고 싶어졌다. 백현아 두 손 다 다쳤는데 어떻게 붙여? 충동에서 그쳤고 백현은 땡볕 속으로 사라져있었다. 연고 뚜껑을 살살 돌렸다. 껍질이 안 뜯어져서 애를 먹었다. 경수는 다친데와 다치지 않은 데를 가리지 않고 밴드를 마구잡이로 붙였다. 손이 요란해졌다. 사장의 눈에 쉽게 띄었고 혼구녕이 났다. 일은 원래 다치면서 배우는 거라는 훈계를 들었다. 경수는 듣는 둥 마는 둥 했다. 며칠 간 쉬라는 소리를 듣고 나서야 고개를 들었다. 그러고 있으면 손님 다 떨어져나가. 어?
*
경수는 가만히 백현을 기다렸다. 드르륵. 낯익고 반가운 뒤통수였다. 경수는 샤프를 굴리던 손놀림을 멈췄다. 사방으로 물을 뿌려대는 통에 운동화가 젖었는데도 가만히 서 있던 백현을 생각하자 웃음이 났다. 별안간 터진 미소에 백현만 굳었다. 왜 저렇게 예쁘게 웃지.
“우리 집 닭 맛있어. 아빠가 손질을 잘하거든.”
“…”
“언제 한 번 놀러와. 근데 엄청 더워. 에어컨이 없어서.”
*
백현아. 사장이 쉬라는 거 있지. 그 소리 진짜 오랜만에 들어봐. 엄마 돌아가셨을 때 그때 한 번 들었었거든. 그때도 그랬다? 상중인 애가 일하면 가게 재수 없다고. 매출 떨어지니까 좀 쉬라 그랬어. 잡일 시키는 게 다라며 돈 한번 제대로 준 적 없으면서 양심도 없지. 그 집 생선도 짜가 투성이에 서비스도 야박한데 왜 안 망하는 걸까? 맨날 친절이 무기라고 자랑하는데 진짜 그게 강력한 무기인가? 그 친절 나한테도 좀 주면 안되는 걸까? 어제 오랜만에 우리 가게 평상에 누워 있었어. 아빠는 간간이 닭 잡고. 희한하게 닭 잡는 냄새는 별로 안 역겨워. 신기하지?
아, 그 얘기를 안했구나. 어쩌다가 여름엔 닭 팔고 겨울엔 센베이 팔게 됐는지. 엄마 돌아가시고 아빠 혼자 가게를 하게 됐는데 둘이 하던 장사가 하나가 되니까 그렇게 힘들수가 없는거야. 다들 무슨 음식이건 간에 여름이 더 까다롭다고 생각하지만 오히려 조류 역병은 겨울에 더 많이 돌아. 겨울만 되면 팔게 없는거지. 그런 건 꼭 우리 집 거쳐가더라. 몇 년을 돈만 날리다가 아빠가 묘안을 생각해냈어. 겨울에 유과나 센베이같은 과자를 떼다 팔면 되겠구나 한거지. 여름엔 살고 겨울엔 죽는 모양새다가 그렇게 하고나니 좀 숨통이 트이더라. 그래서 난 다른 사람이 도베이, 도베이, 해도 그러려니 해. 우리 집 살려준 이름이니까 살려고 팔기 시작한 거니까 나도 잘 살아남을거야, 그렇게 생각해. 근데,
그렇게 생각이 잘 안될때가 있어. 있는데. 앞으로 그러면 네 생각을 하기로 했어.
고마워.
*
백현이 풍덕시장을 두 번째로 찾았을 때, 후미진 골목을 뒤져가며 A-14라고 적힌 주황색 간판을 발견했을 때, 경수는 턱을 괴고 앉아 있었다.
“아빠 자리 비웠는데.”
“오늘도 사러 온 거 아닌데.”
“그래?… 그럼 너도 여기 앉을래?”
경수가 대뜸 평상을 툭툭 쳤다. 가게 밖과 안은 모두 후텁지근했다. 경수 자리도 썩 시원해 보이진 않았다. 선풍기는 강풍 버튼이 눌려 있는데도 바람 세기가 미풍과 약풍을 오갔다. 닭이 있는 곳을 빼곤 전부 찜통이었다.
“많이 덥지?”
“괜찮아.”
(네가 있으니까 괜찮아.)
백현은 이 더위에 나온 걸 후회하지 않았다. 경수가 오라니까 왔다. 그리고 깨달았다. 오라니까 오라는 사람이 되었다. 군말하지 않고. 불평하거나 사양하지 않고 기꺼이 기쁜 마음으로. 머리통이 뜨거웠지만 개의치 않았다. 뭐가 괜찮다는거야. 땀을 줄줄 흘리면서. 경수가 타박하며 웃었다. 얼음물이라도 줘? 묻길래 달라고 했다. 경수가 싸구려 슬리퍼를 질질 끌며 냉장고로 향했다.
가게에 오라고 해서 처음엔 무슨 소리인가 했다. 투잡을 뛰는 줄 알았는데 그것은 아니었다. 아빠란 말에 아빠란 분은 너가 그렇게 고생하는데도 뭐라 말이 없냐고,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고 물어보고 싶어졌는데 물어볼 일이 아닌 거 같아서 참았다. 뭐가 제일 잘나가? 그런 거나 물었다. 경수가 고민하는 듯 하더니 나, 했다. 나, 하고나선 곧바로 농담이야, 하고 덧붙였다. 농담이 아닌 것 같아서 백현은 잠을 설쳤다. 팍팍한 얼굴로 그런 소리를 농이랍시고 지껄이는 경수를 생각하면 베개가 젖었다.
“얼음물도 다 녹았다. 막 줄줄 흘러. 그래도 차가워.”
“아무거나 줘도 돼.”
말은 괜찮다고 했어도 몸이 죄 발갛게 익은 백현이라, 경수는 또 그렇게 더워? 했을 때처럼, 아니 그보다는 조금 더 앞서나간 마음으로, 백현이 저를 달래주었으니 저 또한 백현을 달래보겠다는 생각으로 몇 마디 꺼냈다.
“변백현 너 벌레 싫어하지.”
“응.”
“사람이 고생하면 벌레도 고생한대.”
“…”
“그러니까, 더울 때마다 네가 싫어하는 것들도 고생한다고 생각해.”
백현은 물통을 이마에 댔다. 그리곤,
“싫어.”
“…뭐가?”
“내가 싫어하는 것들이 망가지는 건 바라지도 않아.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좀 웃었으면 좋겠어.”
말하고 보니 눈이 아팠다. 뭔가가 흐르는 것도 같았다. 백현은 물통에서 흐르는 물인 것처럼 굴었다. 다행히 경수는 속아 주었다. 도경수 실컷 웃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하는데 왜 슬퍼지는지 모를 일이었다. 백현은 읊조렸다. 그렇게만 된다면. 그렇게만 된다면 평생 여름이어도 괜찮아. 괜찮을 것 같아, 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