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도] D의 루머 8
  • 2020. 4. 28. 01:13
  • 센티넬버스 세계관

     

     

     

    *

    시덥지 않은 것이 궁금해 질 때가 있다. 왜 일주일은 7일인지. 모든 사람이 월요일과 일요일을 가지고 있는지. 매일이 똑같은 나라의 사람들은 시간의 흐름을 어떻게 느끼는지. 이를테면 센터같은 곳에선.


    이 곳에선 시간을 느끼기가 어렵다. 낮과 밤만이 반복된다. 성큼 다가온 봄이나 찌는 듯한 여름. 추운 냄새가 나는 가을과 새하얀 눈. 투명한 유리벽 너머의 그것은 실재라기 보다는 홀로그램에 가깝다. 나는 시간이 냄새의 영역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축축한 계절의 냄새. 구태여 창문에 코를 처박지 않으면 남의 일일 뿐이다. 나는 대신에 변백현의 얼굴을 본다. 변백현의 얼굴에 드리운, 짙고 푸른 추억을 본다. 변백현에겐 조금 다른 의미로 시간이 흐르지 않는다. 변함없이 불퉁한 얼굴엔 갈수록 나와 멀어지고 있는 것들이 존재한다. 다시 한 번 힘주어 말했다. <경수>를 사랑하는 걸 그만두세요.


    너에게는 시간이 흐를 필요가 있어. 매일 밤 창문에 코를 박아보는 건 어때?


    김민석은 못 들은 체했다. 사람들에게서 온 작은 주스들이 일렬로 세워져 있었다. 눈 둘 곳을 찾지 못하던 김민석이 괜히 그것들을 건드렸다. 과일 주스인데 왜 토마토가 있어? 김민석이 붉은 토마토 주스를 내 얼굴에 가까이 댔다. 경수씨 얼굴색이 꼭 이거랑 똑같다. 나는 김민석이 토마토를 어떻게 생각하는 지에 대해선아는 바가 없었다. 어쩌면 김민석은 제 자리에 맞지 않는 토마토 주스를 괜히 내 얼굴에 갖다 대며 그만 입을 닫으라고 에둘러 말하고 있는 걸지도 몰랐다.


    내게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변백현이 토마토를 어떻게 생각하는 지에 대해서도 관심 없었다. 변백현이 설사 토마토만 봐도 경기를 일으키는 심약한 사람이라 더 이상의 자극을 가했다간 위험해진다고 했어도 나는 말을 멈추지 않았을 것이다. 그만큼 나는 변백현에 대해선 아는 바가 잘 없었다. 대신에 나는 변백현이 가진 도경수에 대한 마음을 알았다. 어떤 사람들에겐 여러 기호나 취향보다 그 사람을 잘 설명할 수 있는 단어가 존재하기도 한다. 변백현에게 도경수가 그렇겠지.


    변백현도 나를 주제 넘는다고 생각할까? 다시는 얼굴을 보지 않으려할까?


    내 얼굴을 보지 않으면 <경수>를 잊게될까, 아니면 더 그리워하게 될까. 그리고 나는 그 중에 어느 걸 더 바라고 있을까.


    “너 왜.”
    “…”
    “사랑하지 말라는 말을 그렇게 해?”


    “꼭 사랑해 달라는 것처럼 하네.”


    <경수>를 사랑하는 걸 그만두라는 말 대신, <경수>를 대신해 나를 평생토록 미워하라는 말을 할 수도 있었다. 사랑같은 낭만적인 얘기대신 지나치게 현실적으로 쏘아붙일 수도 있었다. 김민석이 그랬듯이, 변백현이 나를 포기하면 생기는 다른 낭비들을 언급하며 변백현의 마음을 돌릴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내가 결국 택한 것은 <경수>를 사랑하지 말라는 말이었다. 그 말을 기어코 택한 이유에 대해선 나도 말할 수 없었다. 마음이 복잡했다.


    변백현을 쪼개면 <경수>가 나오지만, 아직 나는 쪼갤 몸조차 없었다. 부서진 파편에 변백현이 깃들었다고 한들 힘 없는 말일테지.


    “그럴리가요.”
    “…”
    “그저 전 가이드 임무를 좀 잘 해내고 싶을 뿐이에요.”


    변백현이 내 쪽을 쳐다보는 것이 느껴졌다. 두껍고 노란 커튼 사이로 빛이 샜다. 지겨운 오후였다.

     


    *

     


    “능력만 빼면 바깥 세상의 다운그레이드 버전이라니까.”
    “이런게 문화지체 아니야?”
    “솔직히 2018 절친노트다, 진짜.”
    “저 새끼랑 어떻게 친해지냐고.”


    훈련실 옆의 조그만 강당에 사람들이 모였다. 궁서체의 플랜카드엔 ‘센티넬-가이드 친목대회장’ 이라고 적혀 있었다. 누군가 앙심을 품고 그 위에 글씨를 덧댔는지 언뜻 보면 ‘친목대환장’ 이라고 보이기도 했다. 센터에 사이나쁜 센티넬과 가이드가 두 사람만 있는 건 아니니까요. 김민석이 뒤에서 속삭였다.


    등급에 맞게 임의로 배정해준 짝들이 마냥 사이가 다 좋을 순 없었다. 나와 변백현처럼 굳이 구구절절한 과거사가 끼어들지 않더라도 불화는 어디에서든 일어났다. 숙소에선 능력을 쓰지 말라는 지침을 어기고 가이드의 몸에 손을 댄 놈도 있다고 들었다. 낮은 등급의 녀석이라 어린애 장난 수준의 상처를 입히는 데 그쳤다. 다들 목소리가 컸다. 옆 사람을 견제하기 위함이었다. 너랑 친해지기 싫거든? 나도 너랑 친해질 생각 없거든? 아옹다옹 거리는 소리가 섞이니 모두가 우습게만 보였다. 변백현은 아무런 말도 없었다.


    “민석씨는 왜 따라왔어요. 사이 좋잖아요. 민우씨, 하고 불러주는…”
    “두 사람이 불안해서 가만히 있을 수 있어야죠. 두 사람 싸우면 다 끝장나는데.”
    “진짜 싫어하면 싸우지도 않아요, 원래.”
     “…두 사람도 그럼 서로 좋아해서 맨날 싸우나 보네요.”
    “저랑 변백현이 언제 싸웠다고.”
    “그날 저 병실에서 무서워 죽는 줄 알았거든요.”
    “…”
    “저도 잘 모르지만, 변백현한테 과거얘기. 꺼내지 않는 편이 좋을거예요.”

     

    걘 늘 죽은 사람같았는데, 요즘엔 죽기 직전의 사람같아요. 훨씬 더 위태로워 보인다구요.


    정각을 조금 지나서야 풍채 좋은 사람이 등장했다. 약속한 시간보다 늦는 것이 권력이라고 믿는 건 바깥이나 매한가지였다. 계속 된 불화로 센터 내 기강이 흐트러지고…. 말이 길었다. 요지는 간단했다. 너네들 그렇게 계속 안 좋게 지내는 꼴이 보기 불편하니 오늘 얼굴 터놓고 좀 가까워지면 어떻겠니? 합동 결혼식이라도 하달받은 사람들처럼 모두의 낯이 뚱했다. 같은 집에 살면서도 멀어진 사이가 이런 데 모아둔다고 나아질리 없었다.


    “에, 오늘 친목도모대회는 총 다섯 개의 프로그램으로 진행되며. 각자의 능력은 사용하지 않고. 순수한 본인의 신체능력으로다가. 에, 맘이 잘 맞으면은 호흡도 잘 맞기 마련이고. 킬킬. 아니 키스를 말한 것이 아닙니다. 알지요, 여러분?”


    수준낮은 유머에 강당히 싸해졌다. 큼큼. 남자가 말을 갈무리했다. 분명 한국어로 말을 하는데도 알아먹기가 시원찮았다. 뭐야, 그냥 체력대회잖아. 누군가 그렇게 말했다.


    “거기 조용-. 아무튼간에, 그렇게 프로그램을 진행해서. 점수가 제일 낮은 팀에게는 두달간의 급여 삭감과 제2 창고 청소…”


    여기저기서 야유하는 소리가 들렸다. 까보니 절친노트도 아니었다. 요즘 일할 사람이 그렇게 부족하다더니. 김민석이 비아냥거렸다. 센터에서 한낱 센티넬-가이드의 불화를 일일이 살필 리 없었다. 나와 변백현은 좋은 명분이었을 것이다. 비스듬히 선 변백현의 어깨에 햇빛이 내렸다. 다부진 어깨는 어떤 말에도 동요하지 않았다.

    불화가 일시적으로 봉합되었다. 싫어하는 새끼는 그대로지만 싫어하는 새끼 때문에 돈도 못받고 그 싫어하는 새끼랑 벌까지 함께 받아야 하는 건 더 싫으니까. 차악을 선택한 사람들이 삼삼오오 팀을 꾸렸다. 능력이 기준이 아니다보니 다들 헤맸다. 저번에 보니까 쟤 배드민턴 잘하던데? 쟤 키 크니까 운동도 잘하지 않을까. 수군거리는 소리 사이에 나와 변백현은 빠져있었다. 얼떨결에 따라온 김민석만 바빴다.


    “도경수 운동 못할 것 같은데.”
    “안 해보고 어떻게 알아.”
    “김민석 넌 잘하는 거 알아. 근데 도경수는 좀, 기력 자체가 없어보여서.”
    “그럼 변백현은?”
    “…변백현은 무서워.”

    나머지 신세를 면치 못했다. 무슨 3인 4각도 아니고 셋이서 팀이야. 내가 어쩌다 얘네랑 친해져서. 김민석이 푸념했다.


    급조된 체육대회였다. 모든게 허술했다. 경기장은 제대로 마련되어있지도 않았다. 전부다 꼴찌만드는 거 아냐? 누군가 소리질렀다. 몇 시간만에 결성된 팀끼리 축구니 농구니 하는 팀 스포츠가 가능할리 없었다. 종목이 간단해졌다. 닭싸움이나 줄다리기 같은 것. 닭싸움은 두툼한 매트(그래도 얇았다.)위에서 해야했고 줄다리기는 마땅한 줄을 찾는데 걸리는 시간이 더 길었다. 어떻게 점수를 매길 것인지도 불분명했다. 풍채 좋은 남자는 자리를 비운지 오래였다. 우리끼리 어떻게 지지볶든 희생자만 만들어 내면 된다고 생각할 게 뻔했다.


    “아 시발 진짜 이게 뭐하는 건데. 솔직히 도경수 니네 때문에 이 고생 하고 있는 거 아냐.”
    “…”
    “그렇잖아. 센터에 사이좋은 새끼들 뭐 얼마나 있다고. 니네가 괜히 다 보는 앞에서 지랄하는 바람에 이렇게 된 거 아냐.”
    “야, 박영진좀 말려.”
    “뭘 말려. 어차피 나대나 안 나대나 판 위의 말 신세인건 똑같은데. 야, 변백현. 너 도경수가 그렇게 꼴보기 싫냐? 어? 나같으면 좋아 죽을 것 같은데. 왜. 도경수 뒷맛이 예전같지…”


    윗 물이 더러우니 아랫물도 비슷했다. 나를 상대로 한 저급한 농담이었다. 김민석이 말리려 들었고 나는 화내려고 달려들었다. 셋 중에 변백현이 제일 빨랐다.  


    “나대나 안 나대나 진짜 똑같은지 궁금하네.”
    “…”
    “하긴, 죽으면 모를수도 있겠다.”
    “와, 능력이라도 쓰게?”
    “못 쓸 것 있어? 나도 궁금하네. 너 하나 죽인다고 뭐가 얼마나 달라질지.”
    “변백현 발작 스위치 도경수 인거 여전하네.”
    “여전한 거 알면 좀 닥치지 이제.”
    “…”
    “왜, 진짜로 죽고싶어서?”
    “…”
    “소원이면 그렇게 해주고.”


    누군가가 나를 구해줄 수 있으리라 믿어 본 적 없었다. 그 어떤 사소한 불행에서도. 내가 누군가를 돕는 것은 뜻깊은 일이어도 그 반대는 낯설고 어색했다. 책임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보답해야할 몫이 남는 것이고 그것은 거추장스러웠다. 서로에게 해가 되는데도 살아가는 여러 인연을 한심해 한 적도 많았다. 가끔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폐를 끼치는 방식으로 증명하는 애정도 있었다.  

    사위가 조용했다. 체육대회는 유야무야 마무리 됐다. 고작 세명의 팀원으로 점수를 낼 만한 종목은 없었다. 놈의 말대로 우리 때문에 벌어진 행사니 주인공도 우리였다. 아까까지만 해도 이 불합리한 팀구성에 불만을 표출하던 김민석이 굳은 표정으로 나와 변백현 사이를 서성거렸다. 강당엔 어느새 셋만 남아 있었다. 변백현은 창문으로 다가갔다. 나는 변백현을 살폈다. 변백현이 지금 왜 커튼을 쥐는 걸까. 변백현이 왜 쓸쓸한 표정으로 창 너머를 바라보고 있을까. 변백현은 어떤 마음으로 내 일에 나선걸까. 아니. 그건 내 일이기도 하지만 어쨌든 변백현을 모욕하기도 한 거니까, 순전히 내 일이라고 보기에는 조금 무리겠지.


    어떤 사람의 행동을 일일이 해석하려드는 이 마음.


    “굳이 안 그러셔도 되는데요.”
    “뭘?”
    “그렇게까지 위협적으로 나설 필요는 없었다는 겁니다.”
    “…걔가 너한테 하는 말 못 들었어?”
    “…”


    들었지. 그리고 그 소리에 네가 어떻게 반응했는지도.


    이런 건 정말로 해로웠다. 폭력적이었다. 싫은 소리를 들었음에도 기분이 좋았다.


    “우리 후딱 청소나 하러갈까? 내가 거기 대충 어디인줄 아는데. 진짜 우리 청소하다 죽을 수도 있어.”


    당장 우리에게 내려진 벌로 김민석은 조급해 보였다. 청소 하는 거 좋아하지 않아요? 내가 물었다. 내 집 청소는 좋아해도 남의 집은 영.


    “…이러니 사람이 부족하지. 여길 누가 청소해.”


    김민석을 따라간 제2창고는 문부터가 녹슬어 있었다. 얼룩덜룩한 손잡이를 당겼다. 그새 손에 때가 묻어났다. 김민석이 옆에서 진저리쳤다. 여길 쓸마음이 있긴 한 거야? 창고 안은 완전히 암흑이었다. 규모조차 가늠하기 어려웠다. 퀴퀴한 냄새가 코를 스쳤다. 변백현이 스위치를 찾아 눌러봐도 어둠은 그대로였다. 문을 열어두고 청소를 하려해도 영 불편했다. 청소를 하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 청소를 사랑하는 김민석이 걸레를 내팽개쳤다.


    “잠깐만. 문 닫아봐.”
    “…문을 닫으라고?”
    “청소를 하지 말란 건 아닐 거 아냐.”
    “능력도 쓰지 말라고 하겠지.”
    “이 정돈 괜찮아. 소꿉장난 수준인데 뭐.”
    “요즘 애들 소꿉장난 무섭다?”
    “근데 우린 애들 아니잖아.”
    “아효, 난 모른다.”


    김민석이 철문을 닫았다. 틈새로 보이는 아주 가느다란 빛을 제외하면 정말로 깜깜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어둠에 익숙치 않은 몸이 순간 굳었다.


    “여기 뭐 있는지 나도 몰라.”
    “…”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있어.”

     

    목소리엔 얼굴이 있었다. 가만히 있으라는 소리에 정말로 가만히 있었다. 찰나지만 기다렸다. 이 어둠을 변백현은,


    “진짜 오랜만에 본다.”


    반드시 밝힐테니까.


    작은 아우라를 가진 빛의 알갱이들이 공중에 떠다녔다. 자석처럼 모이다가도 변백현의 손짓 한 번이면 힘을 잃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몇 개는 나를 따라다녔다.


    “주황색 눈 아파. 흰 색으로는 안 돼?”
    “…주황색이 분위기 좋은데.”
    “무슨, 무드등도 아니고.”


    김민석의 말에 내 앞에 있던 것이 하얀색으로 바뀌었다.


    여기에 청소를 하러 왔는지 이런 것을 구경하러 온 건지. 갑자기 들이닥친 어둠을 몰아내는 변백현은 꽤 멋있었다. 변백현에게 이런 수식어를 많이 붙이게 될수록 내가 괴로워진다는 걸 변백현은 알까? 그런 걸 알기에 변백현은 너무 가득차 있는 상태다. 걘 이미 다른 걸로 꽉차있어서 채울 틈이 없으니 걔가 발산하는 모든 것들은 다 나에게로 오기 마련이었다.

    변백현은 이미 미래가 없다고 했으니까 내 미래마저 앗아가려는 걸까? 그렇지만 변백현. 사랑을 시작하는 사람은 미래를 꿈꿀 수 밖에 없어. 이런 사소한 빛번짐을 보고도 헛된 꿈을 들이켜지.


    “거기 다 치웠어요?”
    “아직요. 생각보다 쓰레기가 많네요. 오랫동안 방치된 것 같은데.”
    “그러니까요. 그냥 개고생 시키고 싶어한 것 같다니까.”


    굳이 서로 나누지 않았는데도 각자 구역을 맡아 청소를 하고 있었다. 쓰레기를 분리하고 먼지를 닦았다. 어느새 김민석이 변백현!하고 말하면 변백현이 손가락을 허공에 휘휘 저었다. 그러면 알전구 같은 빛 덩어리가 허공에 나타났다. 변백현이 한번더 손가락을 튕기면 김민석 쪽으로 알전구가 날라갔다. 장난기가 돈 변백현은 살짝 방향을 비틀기도 했다. 김민석은 볼멘 소리로 흉을 봤다. 야, 너 그거 손가락으로 안해도 그냥 만들 수 있잖아! 변백현은 들은 체 만 체 했다. 내 손가락이 예쁜 걸 어떡해. 나는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거리에서 두 사람의 대화를 들었다. 내게도 빛이 부족한 때가 왔다. 변백현씨! 하고 불렀다. 변백현은 김민석에게 그랬던 것처럼 손을 높이 올렸다. 변백현의 말대로 가늘고 긴 손가락이 주문을 거는 것처럼 오므라들었다 펴졌다. 나는 변백현이 보낸 빛대신 변백현의 손가락을 쳐다봤다. 어느새 변백현이 만든 빛덩어리가 내 앞을 밝혔다. 밝아진 시야로 변백현을 훔쳐봤다. 쓰레기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먼지 냄새가 심해 코가 간지러웠지만 나갈 마음은 들지 않은 것처럼.


    “도경수씨 혹시 청소하는 거 싫어해요? 내가 갈까요?”
    “아뇨, 하고 있어요.”
    “…꼼꼼이 하느라 그런거죠?”
    “네, 그럼요.”


    김민석의 핀잔에도 속도는 느렸다. 변백현이 잘 보이지 않으면 변백현이 보낸 불빛을 하염없이 바라봤다. 뜨끈한 온기가 느껴졌다. 빛에 온도가 있다는 것이 새삼 신기했다. 변백현이 만든 빛이면, 온도또한 변백현의 것일까. 조심스럽게 손을 댔다. 변백현의 몸에 손댄 것만 같았다.


    “뭘 그렇게 애틋하게 만져.”
    “…”
    “쓰레기인줄 알고 그런 건 아닐 거 아냐.”
    “그냥 신기해서 그랬어요.”
    “신기하면 다 그렇게 쳐다봐?”
    “…”
    “거짓말을 잘 못하네.”


    빛이 변백현 주위를 감쌌다. 나는 고개를 돌렸다.


    “다시 한 번 말해봐.”
    “뭘요.”
    “그때 했던 말.”
    “그렇게 말하시면 알 수가 없는데요.”
    “경수 어쩌고 했던 말 있잖아.”
    “변백현씨가 알던 도경수는 없어요.”
    “…그거 말고.”
    “…<경수>를 사랑하는 걸,”
    “…”
    “그만두세요.”


    거짓말 진짜 못하네, 변백현이 중얼 거렸다. 변백현이 머리를 헝클일때마다 변백현의 몸에 자석처럼 달라붙은 빛들이 잘게 부서졌다. 나는 이 순간에도 작게 흩어지는 빛들을 보며 변백현이 어떤 마음을 품고 있을지해석해보려했다. 너는 혼란스럽니. 내 얼굴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니. 혹시 너도 나처럼 내 행동 하나하나를 조각내 그 의미를 되물어 보고 있니.  

     


    변백현, 나는 거짓말을 한 적이 없어.
    <경수>를 사랑하지마.
    나를 사랑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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