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도] D의 루머 6
  • 2020. 4. 28. 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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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센티넬버스 세계관

     

     

     

    *

     

    “와”
    “…”
    “그런 말도 할 줄 알았구나.”


    열린 창 틈 사이로 바닷가에서 불 법한 바람이 불었다. 억셌다. 얼핏 짠내가 난다고 느꼈는데 그게 어디서 오는지는 알 길이 없었다. 변백현도 나도 울지 않는데 풍경만 소금기에 절여지고 있었다. 그런 말이 뭔지는 정확히 몰랐어도 그게 변백현을 자극하고 있다는 사실만은 분명했다.


    그렇지만 진짜 무서운 것은 그 후로 아무 말도 꺼내지 못하고 있는 나였다. 할 말이 너무 많으면 말하는 법을 잊는다.


    봐봐. 변백현. 넌 문을 열었어. 이런 걸로는 사람이 죽지 않는 다는 걸 알면서도. 고작 샤워기 좀 오래 틀어두었다고 바로 달려오고 말이야.


    그거 알아? 사실 이건 굉장히 오래된 실험이야. 살던 집에서도 종종 했었지. 난 멀끔하게 옷을 차려입고 욕실로 들어갔어. 그리곤 가장 뜨거운 물을 틀었지. 입에 담으면 바로 뱉을 것 같은 온도. 희뿌연 증기로 거울이 보이지 않고, 그제야 난 종일 머릿속을 채우던 <경수>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는거야. 잡념이라고 부르고 싶은데 그러면 죄를 짓는 기분이니까. 잘못한게 없는데 잘못한 기분. 괜히 내가 있어서, 분명히 나또한 <경수>인데도 나라는 새로운 인격이 이 몸을 차지해버리는 바람에 모든 사람이 사랑하고 아꼈던 대단한 위인을 벼랑에서 밀어뜨린 범인이 된 기분.


    사람들은 잘 모르는거야. 나도 나를 잃었다는 걸. 가장 큰 피해자는 나인데, 모두가 그 불행에서 나를 소외시켜.


    원망할 사람이 필요하단 건 알아. 잘잘못을 가리고 싶어 하는 이 세계의 오래된 성미까지도. 사람 하나 세워두고 돌을 던지면 모두의 마음이 편해진다는 것도. 다들 문 밖에서, 끊이지 않은 물소리를 들으며 내가 익사하길 기다리고 있다는 것도.


    “소속 바꿔야 겠다. 가이드 말고 센티넬로.”
    “…”
    “독심술 터득한 것 같은데.”


    문을 연 사람은 네가 처음이야.
    이 말을 네가 이해할 수 있을까.


    변백현이 내게로 달려들었다. 야차같았다.


    녀석이 내 입술을 뜯었다. 정말로 짭조릅한 맛이 났다. 키스도 입맞춤도 아니었지만 입술이 부딪히는 찰나에 손끝이 짜릿했다. 이건 가이딩이 이루어졌다는 신호일까? 내 맘 어디에도 변백현을 가이딩해보겠다는 포부 같은 건 없었다. 대신에 그런 건 있었다. 변백현이 나를 곤란하게 만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변백현이 문을 열지 않았으면 좋겠다. 변백현이 나를…


    “어때. 니 말대로 나 하고 싶은 것 좀 했는데. 나 기분 좋아보여?”
    “미안합니다.”
    “…미안?”
    “실언이었어요.”


    나는 진심을 다해 <경수>에게 미안한 사람이고 싶다. 그를 잃어버리고야만 나를 책망하며, 평생을 사과하며, 그렇지만 어느 정도는 억울한 기분으로 살아가고 싶다. 나를 섣부르게 자극하면 나는 비뚤어져. <경수>가 뭐 얼마나 대단한 영혼이었나 싶고 그가 누리던 호사를 빼앗고 싶고 그가 받아먹던 사랑이 질투가 나. 오늘처럼 발끝만 물 속에 잠겨도 호들갑 떨며 나를 구해주려는 사람이 있으면, <경수>가 된 양 살아가고 싶어져. 송두리째 욕심이 난다고.


    “어디부터가 실언인데.”
    “전부 다요.”
    “너를 좋아하냐는 것도. 만지고 싶냐는 것도. 건드리고 싶냐는 것도?”
    “…”
    “실언이라 하기엔 너무 똑똑히 들렸는데. 말 허투루 하는 타입 아니잖아.”


    “도경수, 착각하지마.”


    <그런 건 실언이 아니라 허언이라고 하는 거야.>


    적어도 내게는, 말은 아무런 힘이 없다. 돌아온 내게 속삭이는 사람은 많았지만 진짜로 사랑을 주었던 사람은 없었거든.


    변백현은 늘 도경수를 주시하고 있지. 도경수가 없는 곳에서 그를 욕보이지 말라며 으름장을 놓고 다니고, 도경수와 같은 집 안에 있는 한은 어디서든 숨죽이고 그 동태를 살피고 있어. 늘 문을 열 준비가 되어있는 너.


    그걸 어떻게 착각하니.

     


    *

     


    “여기 뭐 도서관 같은 곳은 없나요?”
    “엄청 작은 규모로 있긴한데. 복지 없는 복지. 그게 여기거든요. 먹을 거만 배부르게 주면 장땡이라고 생각하는거지. 아니면 능력은 키우되 지성은 크지 말았으면 하고 바라는 거든가. 근데 도서관은 왜요?”
    “거기있으면 시간이 잘 가거든요.”
    “…좋겠네요. 여유로워서.”


    김민석과 훈련-이라고 하지만 배드민턴 치기가 주된 내용인-을 마치고 벤치에 앉았다. 계절이 거세된 곳이었지만 김민석의 몰골만 보면 꼭 여름 같았다. 김민석은 빠져나간 수분을 다시 채우겠다고 마음 먹은 듯 쉬지않고 물을 마셨다. 배드민턴은 나쁘지 않았다. 나름 시간도 잘 흘러갔다. 몇 시간이고 계속할 체력만 있다면 좋았겠지만 안타깝게도 그렇지는 못했다. 땀을 흘리는 일도 귀찮았다. 여러 과정이 수반되는 일이었다. 옷을 갈아입어야 하고, 두 명이서 랠리를 주고받을 공간이 있어야 하고, 마친 후에는 샤워도 해야했다. 독서가 급했다. 어디서든 할 수 있고, 누구의 도움도 필요치 않으며, 정리하는 과정도 없는 간단한 일. 그러면서도 시간을 잡아먹는 데에는 능숙한.


    “그렇게 여유롭진 않은데.”
    “…”
    “아까도 보셨잖아요. 제 가이딩이 칼 같다면서요.”


    김민석은 내 가이딩이 칼같다고 했다. 타로카드를 봐주는 역술가처럼 무슨 우환이 있냐고도 물었다. 좀 매서운 구석이 있다는 소리였다. 그 사람의 심리 상태에 따라 영향을 받는 게 가이딩 이라며, 내 가이딩을 굳이 표현하자면 검무를 추는 사람같다고 했다. 수술 받는 느낌이라니까. 분명히 치료는 치료인데 좀 아파.


    “…변백현 한테 못 들었어요?”
    “뭘요?”
    “서로 아예 말을 안하는구나. 입 텁텁해서 어떻게 산대.”
    “우리가 서로 소탈하게 앉아서 대화하는 것도. 좀 웃기지 않아요?”
    “그래도.”
    “…”
    “변백현 오늘 아침에 불려갔어요. 아니 왜 그쪽은 맨날 시끄럽고 지랄이야. 시끄럽게 안하면 죽는 병이라도 걸렸나.”


    변백현과는 그 밤 이후로 한 번도 마주치지 않았다. 그전에는 그래도 형식상의 인사는 했었다. 모든 것이 익숙한 쇼윈도 부부처럼 서로를 대했다. 껄끄러운 감정이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굳이 수면위로 그것을 들추진 않았다. 짧게 부딪힌 찰나의 순간이 서로에게 치명적이었다는 사실은 이런 방식으로 증명되고 있었다. 더는 쇼윈도부부 같지 않아. 열렬히 사랑해서 서로에게 해를 입히는 연인에 가깝지.


    변백현은 급하게 차출되었다. 전쟁이라고 할 정도로 심각한 건 아니고 그냥 애들이 놀이터에서 얼음땡을 하는 것처럼 강대국끼리의 작은 놀이 같은 거라고 했다. 희생되는 사람이 분명히 있을테니 놀이라고 말하기엔 비윤리적인 구석이 있었으나 김민석은 그런 데에 무감해지지 않으면 여기서 살 수 없다고 했다. 김민석은 배드민턴 공을 살폈다. 성한 공이 없었다. 나는 말 없이 커피를 마셨고 김민석은 진작에 한 잔을 다 비웠다. 한 손에 채를 쥐고 날개가 부러진 공을 튕겼다. 둔탁한 소리가 났다.


    “변백현이 걱정되긴 하나 보네.”
    “…”
    “아까부터 입에만 갖다 대고 한 모금도 안 마신거 알아요?”


    커피가 아니라 불안을 먹고 있었구나.


    “그래가지고 도서관 갈 수 있겠어요? 한 글자도 못 읽을 거 같은데.”


    이 불안은 어디에서 오는가.

     


    *

     


    도서관은 김민석의 말처럼 도서관이라 부르기엔 민망한 수준이었다. 도서관이 아니라 그냥 책장 몇 개를 방치해 두었다고 봐야 옳았다. 책은 기준없이 꽂혀 있었고 그마저도 몇 개는 사람들이 버리고 간 쓰레기처럼 상태가 나빴다. 표지가 구겨져있거나 찢어져 있는 경우도 있었다. 나무에선 나쁜 냄새가 났다. 사람의 손길이 들지 않은 곳에서 나는, 음습하고 찝찝한 냄새였다. 벽에는 <신청도서> 라고 적힌 팻말이 있었으나 그 역시 본래의 기능을 하지 못한 채 방치되어 있었다. 그걸 방명록처럼 쓴 사람들 탓에 낙서로 엉망이었다.


    누구누구 왔다감.


    “…아.”


    변백현(과 도경수) 왔다감.


    필체를 보아하니 제 것은 아니었다. 도서관에서 데이트라도 한 모양이었다. 먼지 쌓인 소파위에서 구르기라도 했을까. 책 같은 건 안중에도 없이, 그저 아무도 오지 않을 법한 공간을 찾아냈다는 것에 기뻐서.


    사람의 손이 닿으면 온기가 묻고 그 온기에 사물은 낡는다. 가끔은 인간과 멀어진 것들이 소름끼치게 아름다울 때가 있고, 어떤 보물들은 그걸 위해 일부러 사람들과의 접촉을 피한다. 유리벽 속에 가두어진 고대의 유적들. 일정 거리 안으론 다가갈 수 없는 세기의 미술품들. 손끝이 닿을 때마다 사물은 삭혀지고 그걸 다들 ‘손때’라며 비하하지만, 누구는 그걸 추억이라 부른다. 그건 유적이나 미술품과는 또 다른 아름다움이 되고.


    나는 그걸 잃어버린 사람이지.


    시선을 돌렸다. 책을 두라고 만들어둔 탁자에 사람들이 제일 많이 본 듯한 책들이 정리되지 않은 채로 쌓여있었다. 제목은 다양했지만 내용은 비슷해보였다. 이런 걸 출판하는 출판사가 따로 있었나 싶을 정도로 경악스런 책들이었다. 번지르르한 정치인이 위인으로 등장하는 자서전도 이보단 덜 유치하겠다 싶었다. <가이드&센티넬을 위한 키스잘하는 법>.


    가이드와 센티넬의 키스는 보통 사람들의 키스와 달라?


    극악의 호기심으로 한 장을 넘겼다.


    <가이딩의 대표적인 기술, 키스죠. 키스를 잘하기 위해선 신체 구조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입을 댄다고 능사는 아니니까요. 부드러운 키스는 곧 부드러운 가이딩이며 이는 센티넬에게 높은 만족감과 안정감을 줍니다. 항간에 체리 꼭지를 혀로 묶을 수 있으면 키스를 잘한다고 하던데 그런 건 다 낭설에 불과합니다. 가이드나 센티넬은 신체 일부분이 비정상적으로 발달된 사람들이기 때문에 체리 꼭지 같은 건 쓸모도 없어요. 체리가 얼마나 비싼 과일인데요. 다 돈 낭비라구요. 우리에겐 직관이 있어야 합니다. 체리꼭지를 묶을 시간에 혀를 어떻게 돌려야 스무스하게-기름칠 한 태엽처럼-먹혀 들어가는 지를 연구하셔야 합니다. 고개를 돌리는 법도 마찬가지죠.>


    아.
    지식인이야 뭐야.


    이딴 걸 사람들이 닳도록 봤다니.


    책장을 정리했다. 출판사대로 꽂아봤다가, 이름 순으로도 꽂아봤다가, 작가 순으로도 꽂아보았다. 키를 맞추어도 정리해봤고, 두께를 분별해 무거운 책은 아래에 가벼운 책은 위에도 두어보았다. 몇 권 없는 시집을 들추어보았다. 어린이용 만화를 보며 낄낄대기도 했다. 여기까지 마수를 뻗친, 꼰대들의 지침이 담긴 에세이를 구경하기도 했고, 어떤 사람이 너무도 감명깊게 읽은 탓에 거의 모든 페이지가 접혀있는 책을 들여다보기도 했다. 열 페이지 당 한 번 꼴로 밑줄이 쳐진 걸 볼 수 있는 책을 발견하고선 그 다음 밑줄을 궁금해 하기도 했다. 아끼던 작가의 책이 한 권 있는 걸 보곤 반가워 하다가 썩 좋아하는 작품이 아닌 걸 알고선 쓸쓸해지기도 했다. 이런저런 일을 많이 했다.


    그런데도 시간이 흐르지 않았다.


    누군가를 기다리면 시간이 잘 흐르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나를 너무도 많이 기다린 탓에 미쳐버린 사람들이 떠올랐고, 처음으로 그들을 조금 이해하게 되었다. 매 분 매 초가 이렇게 느리고 더디게 흐른다면 사람은 망가질 수 밖에 없다. 불안한 상상은 플라나리아처럼 빠르게 번식했다. 나는 아이를 위해 만들어진 듯 큰 글씨로 인쇄된 책을 두고도 제목조차 제대로 읽지 못했다.


    김민석은 놀이라고 했지. 하지만 사람은 한낱 목욕탕에서 넘어져도 바닥에 깔린 대리석에 금이 나 있으면 거기에 피부가 찢겨 나가는 존재다. 도저히 무감해지지가 않아.


    호출기가 울렸다. 무섭고도 반가웠다.

     


    *

     


    “…경수씨! 여기요.”


    김민석이 나를 불렀다. 사람들이 모여있다가 내가 도착한 걸 보고는 수군거리며 자리를 피했다. 무리가 떠나자 가려진 변백현이 보였다. 어지러운지 한 팔을 이마에 대고 있었다.


    “쟤를 왜 부르는데.”
    “지금 니 상태를 보고 그런 소리를 해라.”
    “내 상태가 뭐가 어때서. 쟤 없어도 돼.”
    “한 마디만 더하면 아예 입을 막아버린다. 너 지금 위험해. 까닥 이대로 두었다간 폭주까지 온다고. 넌 니가 무슨 진짜 무쇠로 만든 슈퍼맨이라도 되는 줄 아는 모양인데, 너 한번 더 폭주왔다간 그 자리에서 뒤질지도 몰라. 너 송장 치우는 일에는 죽어도 취미없으니까. 조용히 있어.”


    기척이 느껴질게 분명한데도 없는 사람 취급이었다. 존재를 부정당하는 데도 나쁜 마음이 들지 않았다.


    “됐다고. 난 쟤한텐 가이딩 못 받아.”
    “…”
    “도경수한텐 못 받는다고.”
    “저 도경수 아닌 거 아시잖아요. 변백현씨 기억속의 그 도경수, 없어진지 오래예요.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하시고…”


    내 말에 변백현이 얼굴을 가리고 있던 손을 내렸다.


    “뭐가 달라. 하나도 안 달라. 니 얼굴만 보면 이렇게 엿같은데 뭐가 달라.”
    “…”

    “우는 것 봐. 우는 소리 들려서 일부로 안 보고 있었던 건데.”
    “제가 똑같습니까?”
    “몇 번 말해. 넌 그냥 도경수야.”
    “그냥 도경수구나. 그렇구나…”


    문을 연 사람은 네가 처음이야. 다르지 않다고 말해준 사람은 네가 처음이야. 그게 어떤 것보다 내게 로맨틱하고, 그래서 당장에 뛰어 내리고 싶다는 걸. <경수>를 진실로 질투하느라 속이 문드러진다는 걸.


    네가 이해할 수 있을까.


    “씨발. 너 알고 그러는 거지?”
    “…”
    “…진짜 못됐다.”


    <지 울면 나 못 견딘다는 거 알고…>. 변백현이 읊조렸다. 내가 울고 있다는 사실을 변백현이 말해 주어서 알았다. 변백현의 머리칼이 땀에 젖어 있었다. 옆에서 김민석이 발을 굴렀다. 변백현은 고산 지대에 올라간 사람처럼 숨을 뱉었다. 와중에도 절대 나에겐 가이딩을 받지 않는다며 포효했다. 단추를 두 어개 푸른 셔츠 사이로 변백현의 가슴이 누군가 위에서 누르는 것처럼 불규칙적으로 팔딱 거렸다.


    <센티넬&가이드를 위한 키스 잘하는 법>


    그 책을 사람들이 많이 본 까닭이 정말로 키스를 잘하고 싶어서는 아닌 것 같다. 드라마에서 본 것처럼 내 다리가 다 풀리는 달콤한 키스. 그런 건 그들에게 중요하지 않을 지도 모른다. 키스 자체가 목적은 아닌 것이다. 키스는 치료고, 가이드와 센티넬에겐 이토록 절박한 순간이 자주 찾아 오겠지. 살리고 싶은 마음. 나사가 풀려서 휘청거리는 사람을 붙잡고, 제발 원래대로 돌아와 달라고 비는 마음. 나를 욕하고 씹고 거부해도 좋으니까, 파리한 안색만큼은 보지 않았으면 싶은 마음. 이렇게 절박한 구애가 또 있을까.


    “…도경수씨!”


    변백현은 나를 밀쳐내고 김민석은 나를 부추기고 나는 온전히 나의 의지로, 변백현의 얼굴을 붙잡았다. 무작정 입술을 갖다 대었다. 김민석의 칼 같다는 말이 떠올랐고 변백현도 그렇게 느낄까봐 약간은 겁이 났다. 최대한 부드럽게 하려고 노력했는데 마음이 요동치는 바람에 그렇게 하기가 어려웠다. 변백현이 거센 힘으로 나를 미는 동안 나는 변백현과 공명했다. 낭떠러지에 매달려 있던 변백현을 끌어올렸다. 땀으로 범벅된 변백현의 이마에 바람을 불어주었다. 제대로 된 박자 없이 널뛰던 가슴팍이 천천히 하강하는 것이 보였다.  


    일순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가이드로 바뀌어서 다행이지.
    <경수>, 너는 이럴때에 어떻게 했니. 곁에서 울기만 했니.


    <경수>를 도저히 따라잡을 순 없지만, 대신에 <경수>가 못하던 걸 할 수 있었다.


    슬픈 승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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