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도] D의 루머 4 - B
  • 2020. 4. 28. 00:46
  • 센티넬버스 세계관

     

     


    *변백현


    깨어나기 전에 반딧불을 봤었다. 나는 태몽을 꾸는 여자들처럼 반딧불을 삼켰다. 배 속이 뜨끈했다. 반딧불 알러지 같은 거라도 있나. 그런 게 아니라면 왜 이렇게 어지럽지. 열 세 살, 나의 삶은 뿌리채 뽑혀 다른 곳으로 옮겨졌다. 눈을 감기 직전 보았던 반딧불은 반딧불이 아니라 내가 <발현>될 때 사방으로 흩뿌리던, 찌꺼기 같은 거였다.


    센터에서의 첫날은 정말로 찌꺼기처럼 좀 더럽고 음습했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센터는 어린애들에게 좀 무섭게 구는 편이라고 했다. 애들을 통제하기 위해서였다. 당장에 임무로 배치시킬 만큼 잔인한 곳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부모 노릇을 해줄만큼 아량이 넓은 곳도 아니었다. 그저 적당히 교육을 받고 주는 밥을 먹고 센터에서 말하는 훌륭한 일꾼으로 자라면 그만이었다. 그 즈음엔 센티넬-가이드가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 영화 속의 히어로는 마음씨도 따뜻하고 히로인과 찐한 연애도 했지만 여기선 다들 서로간의 거리를 철저하게 유지했다. 능력을 가진 대신 마음을 뺏긴 사람들 같았다.


    -야, 변백현. 너도 봐서 알잖아. 우리 솔직히 등급 다 거기서 거기야.
    -그래서?
    -밖에서도 마찬가지잖아. 몇몇 높은 애들 빼고는 별 의미도 없다니까. 솔직히 수감된거나 다름없다니까? 성폭력범도 형량이 3년 되는 마당에, 이건 순 무기징역이잖아. 여긴 완전히… 존나 큰 닭장이라고. 어느 면에선 더 잔인해. 닭이 되는 줄도 모르고 닭장에 갇히는 거잖아.
    - 너 그런 생각하다가 훈육실로 끌려간다.
    - 이 정도는 봐줘야지, 솔직히. 내가 무슨 센터를 뒤집겠다고 한 것도 아니고.


    센티넬-가이드를 효과적으로 운용한다는 방침은, 바꿔 말하면 적재적소에 쓰일 사람들이 필요하단 거였다. 사람이 그런 존재가 될 수 있을까. 그건 사람이라기 보다 기계의 부품에 가깝지 않나.


    혹시라도 있을 반란을 제압하기 위해서, 우리는 매일 일정한 절차를 밟아야했다. 사람의 기억을 스캔하고 그 내용을 훑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센티넬 고문관에게 하루 동안 불순한 생각-이를테면 센터를 뒤집겠다거나 못 해먹겠으니 당장 여기를 도망치겠다거나 하는 것-을 했는지 안했는지를 검사 받아야 했다. 이런 곳에서도 사람은 자라서, 생리적인 욕구에 못 이겨 몽정을 한 밤이면 수치심으로 몸이 떨렸다. 나를 담당하는 센티넬은 내 우려와 다르게 아무런 티도 내지 않았다. 늘 똑같았다. 죽은 생선을 가르는 표정.


    -어린 나이에 센티넬이 된 건 행운이란다.
    -좋은 등급을 받을 확률이 높기 때문이지!


    거짓말.


    열세살은 생각보다 똑똑하다. 그리고 영악하고, 좋은 것을 구별할 줄 알고, 나쁜 것을 가려낼 줄도 안다. 확률은 어차피 되고, 안되고의 두 가지 경우 뿐이었다. 나는 대강 내 능력을 알았다. 장미꽃만한 반딧불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 나의 전부였다. 여기서 내 능력이 폭발할 가능성은 내 키가 190이 될 확률과 비슷했다. 아니 어쩌면 그보다 낮을 지도. 로또를 맞는 것이 더 쉬울지도 모른다. 로또는 매주 당첨자를 내지만 남들과 다르게 두각을 나타내는 뛰어난 센티넬은 일년에 한두명이 나올까 말까 하니까.


    애들은 전부 적응하는 듯 보였고, 아무도 적응하지 못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수련회만 가도 촛불을 켜두고 부모님 생각에 훌쩍거리는 나이였다. 강제적 고아로 전락한 마당에 서로 형제라도 되어주면 좋으련만. 남을 살필 정도로 여유있지 못했다. 그래봤자 다들 B에서 C를 오가는, 자라봤자 센터 안에서 멀끔한 옷을 입고 능력의 전부를 죄 빨려가며 일을 하게 될 미래를 짊어지게 됐음에도 그 안에서 세세하게 벽을 뒀다. 척 보기에도 A등급을 받을 것 같은 녀석은 우두머리가 됐다. 능력 같지도 않은 능력을 구사하는 녀석은 쫄따구를 자처했다. 중세 시대보다 더한 신분제였다. D등급을 받았다는 형이 식당으로 들어오면 다들 비아냥 거렸다. 세상에 무슨 알파벳이 D도 있었냐?


    열 다섯의 나는 비-마이너스를 받았다.


    -변백현, 형님은 쁠 떴다.
    -그래, 난 마이너스다. 어쩔래.
    -어쩌긴, 이제부터 호칭 정리지. 형님해봐, 형님.
    -그렇게 좋냐. 고작 비쁠이면서.
    -그렇게 좋다. 고작 비 마이너스는 아니어서.


    준수놈은 A++떴대. 대박이지. 찬열은 남의 행운을 제 것처럼 자랑했다. 에이 쁠쁠 이라니. 또래 중엔 처음 이었다. 대개 지금껏 높은 등급의 센티넬은 이름만 들었지 그 얼굴은 한 번도 본 적 없는, 미지의 동물에 가까웠다. 야. 그 사람들은 막 오오라가 있다던데. 한때는 그런 허무맹랑한 소문이 돌기도 했다. 며칠 전만 해도 건너편 식탁에서 밥을 먹던 준수였다. 바깥에서 있었으면, 나랑 같이 농담 따먹고 장난 치던 친구가 세기의 스타가 되는 걸 보는, 그런 기분일까. 나는 열 세 살 이후로 멈춰있는 바깥의 기억을 그런 방식으로 소환했다. 이런 경험은 바깥으로 치면 어떤 걸까. 이런 감정은. 이런 생각은.


    -그리고 또 대박.
    -뭔데.
    -아까 중앙제어실 근처 지나가다가 들었음. 오늘 센티넬 두 명이나 들어왔대. 그것도 우리 또래.


    맘 한번 제대로 주지 않으면서 막상 또래라니 반갑기는 한 모양이었다. 불행을 N분의 1로 나눈다고 크기가 작아지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위로가 되는 것처럼. 찬열이 내게 말할 정도면 이미 다른 사람들도 다 알고 있다고 봐야 옳았다. 지금쯤이면 삼삼오오 모여 새로 들어올 애들의 능력이나 등급같은 것을 생각해 보고 있을 터였다. 박찬열도 비슷했다. 야, 그래도 열다섯에 들어오는 거면 보통은 C아니겠냐?


    모두의 예상과 반대로 둘 다 보통내기는 아니었다. 하나는 등급이 비밀에 부쳐졌고, 하나는 만천하에 까발려졌다. 우리는 동물원에 온 것처럼 녀석이 들어간 검사실 주변을 빙 둘러 서 있었다.  


    -…에프?
    -와 내 눈이 잘못된 거 아니지. 변백현 니 눈에도 저거 에프지? 그런 등급도 있었냐? 들은 걸로는 ABCD, 그리고 S가 다인데.
    -…
    -판타스틱의 F는 아니겠지.
    -그럴 리가.


    아무리 촌스럽고 조악한 감성으로는 혀를 내두를 정도인 센터라지만. 등급 이름을 두고 장난을 치진 않을 터였다. 찬열이 옆에서 믿기지 않는 다는 얼굴로 F로 시작하는 그럴듯한 영어 단어를 계속 나열했다. Fantastic, Fabulous, Fancy….


    -FUCK이네 FUCK
    -낙제라는 건가.
    -여기서 낙제면 FUCK이지 뭘, 그 능력으로 뭘 하려고. 차라리 그 시간에 센터를 청소하는 게 더 효율적일 듯.


    F는 정말로 ‘낙제’였다. 한 모금 남은 주스 같은 인간이라고 하면 이해가 쉬울까. 능력이 없는 건 아닌데 너무도 미미해서 능력이라고 부르기는 좀 뭣하고 그렇다고 평범한 인간이라고 보기에도 좀 그런. 국경선이 애매한 두 나라 위에 선 사람을 보는 것 같았다. 우습진 않고 당황스러웠다. 주위를 둘러보니 다들 그런 기색이었다. D를 대하는 방법은 알았어도 F를 대하는 방법은 몰랐던 거다.


    검사실의 장막이 걷혔다. 우리에게 내려온 최초의 F. 녀석의 얼굴을 구경하기 직전, 다들 숨을 삼켰다. S는 들어보기나 했지 F는 들어본 적도 본 적도 처음이다.

     




    그걸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까.

    찬열이 옆에서 나를 툭툭 쳤다. 돌아보지 않았다. 더 중요한 것이 앞에 있었다. 피딱지가 내려앉은 입술을 유심히 쳐다보았다.

     


    반딧불을 삼키던 밤이 기억났다. 그런 불빛은 처음이었다. 오래 보고 싶다고 생각하는 순간 불빛이 나를 향해 돌진했었다. 너는 아마 이걸 평생 짊어지고 갈 거야. 그렇게 말하는 듯 했다. 장담컨대 여기모인 녀석들 중 반은 저 얼굴을 벌써 심장에 아로새겼을 것이다. 남녀를 불문하고 밤이면 그 잔상이 흐릿해져가는 것에 맘을 졸이며 애가 달겠지. 박찬열. 네 말이 맞았어. 쟨 판타스틱이야. 존나 환상이라고.

     


    *

     


    도경수는 소문을 몰고 다녔다. 남이 주는 사랑으로 늘 꽉차 있었다. 몸만 컸지 사교성이라곤 영 꽝인 녀석들이 도경수를 어떻게 해보고 싶어서 안달이 났다. D등급을 대하듯 하대하진 않았는데 그렇다고 잘해주는 것도 아니었다. 다들 마초처럼 굴었다. 야, 경수 괴롭히지마. 경수는 나랑 친하게 지낼 거니까. 그치? 그런 말에 도경수는 큰 눈을 굴리며 눈치를 봤다. 중이병을 앓아 왔을 열 다섯인데도 도경수는 별 탈 없이 이곳에 적응하는 듯 보였다. 처음의 피폐한 행색은 잠깐의 꿈 같았다. 잘 웃었다. 웃는 얼굴에 침 못뱉는 다는 걸 알아서 그러는 애 같았다.


    사랑에는 시샘이 뒤따랐다. 은근한 괴롭힘이 늘 있었다. 말만 번지르르했던 마초들은 도경수를 은근 슬쩍 더듬는 것에만 눈을 밝혔지 도경수의 일상에 대해서는 크게 관심이 없었다. 훈련은 등급 별로 나눠서 진행됐고 F인 도경수 한 명을 감당할 인력은 없었다. 나는 여러 갈래로 뻗치는 빛을 하나로 모으는 연습을 계속했다. 빛이 고이는 곳에 도경수의 얼굴이 아른 거렸다. 이 시간에 뭘 하고 있을까. 여기 있는 애들은 모두 흐르지 않는 시간 속에 갇혀 있었다. 훈련은 몸을 지치게 했고 잠시나마 시간이 흐른다는 느낌을 줬다. 도경수는 어디서 이 긴 하루를 견딜까. 뭘하며. 무엇을 보며. 나는 걔의 그런 것들이 궁금했다. 걔를 더듬고 싶냐 아니냐는 나중 문제였다. 자꾸만 맘에 걸렸다. F등급을 받고 나오던, 온 세상의 불행이 자기에게 떨어졌다는 걸 실감하던 작고 초라한 얼굴.


    -너 여기서 뭐해?
    -서있으래서.
    -누가?
    -그냥, 애들이.


    건물 외벽에 진 그림자에 동상처럼 서있는 도경수를 발견한 오후였다. 도경수는 어릴 때 경북궁 같은 데서 보던 사람들처럼 똑바로 서서 응달을 밟고 있었다. <애들이 그러라고 했다>는게 무슨 말이지. 얘 한테 이런 걸 시키는 애들도 있고 얘는 그런 걸 시키면 자기 일인가 보다 하고 서있는 건가. 그게 뭐야. 왜 서 있는데? 하필 이 거무튀튀한 곳에?


    -내가 F긴 해도 능력이 힘이잖아.
    -그래서?
    -여기 서있으면, 건물이 안 무너질거라고.


    무슨 소리야, 그게.


    -그걸 믿어?
    -…아니.
    -그럼.
    -여기 서있으면 시간이 잘 가. 뭔가 일을 하고 있구나, 싶고.


    도경수는 늘 그러던 것처럼 말갛게 웃었다. 나는 그렇게 웃지 말라고 하고 싶었다. 툭 건드리면 울 것 같은 얼굴로 있으면서 입꼬리만 올리면 다들 넘어가 주니까 이게. <막 웃지마> 라고 말하려고 했는데 내가 울었다. 남들이 도경수에게 한 마디라도 붙이려고 안달낼 때 나는 멀찍이 뒤에서만 관찰했었다. 비슷한 마음을 품었음에도 대단한 얼굴을 지켜보는 걸로 그쳤었다. 그 이유를 그제야 알았다. 도경수는 내가 센터에 처음 왔을 때와 너무도 비슷했다. 간신히 적응해보려고 발버둥치는 모습. 습관처럼 웃다 보면 진짜로 웃을 날도 오겠지, 하는 절망적인 기도를 품고 사는 얼굴. 나까지 손대면 정말로 무너질 것 같은 너.


    나는 그래도 박찬열이랑 시시껄렁한 농담도 하고 어느 날은 훈련에 재미를 붙이기도 하고 늘 종양처럼 느껴지던 내 능력이 조금 신기해서 잠을 못드는 날도 있고 친구도 여럿 사귀었고 밥이 맛있는 날도 있고 햇살이 따뜻해서 좋다고 느끼는 날도 있는데.


    아직 너에겐 아무볕도 들지 않았겠지. 네가 서있는 그 구석처럼.


    -너 왜 울어.
    -…
    -나 보고 웃는 애는 봤어도 우는 애는 처음이네. 울지마.
    -…
    -너 울면 나도 운다. 그건 싫지? 그러니까 그쳐봐.
    -이따 밤에도 서있을거야? 여기에?
    -아마? 밤에도 안 추우니까.
    -알았어.


    그날 밤부터 나는 훈련이 끝나기 무섭게 도경수가 서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하늘이 어둑해지면 손으로 작은 반딧불을 만들어냈다. 도경수가 있는 공간 정도는 비춰줄 수 있는 정도의 크기였다. 조용히 도경수가 있는 쪽으로 빛을 날려 보냈다. 벌레인 양 몸을 피하던 도경수가 가만히 둥둥 떠있는 빛을 보더니 주위를 두리번 거렸다. 민망했지만 눈을 피하지 않았다. 도경수가 진짜로 웃는 게 보였다. 어둠 속에서도 그런 것은 보이기 마련이었다. 밤마다 어디로 쏘다니는 거냐며 박찬열이 집요하게 추궁해도 털어 놓지 않았다. <그냥, 불장난좀 하러 다니고 있어.> 불은 내 능력인데 니가 그걸로 장난을 왜치냐? 궁금해하는 박찬열을 슬쩍 쳐다보고 말았다.


    -능력을 함부로 사용하면 안될텐데.
    -이 정도는 괜찮지 않나요? 그냥 노는건데.


    기억을 검사하는 고문관이 내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숨긴다고 숨길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재밌게 사는구나.
    -…
    -그래, 그런 거 라도 해야지.
    -뭘요?
    -니가 하고 있는 것 말이다.


    <바깥에선 보통 그런 걸 사랑이라고 부르지>. 늘 기계같던 고문관이 나를 보고 웃었다. 처음으로 그가 사람처럼 느껴졌다.

     


    *

     


    도경수와 대놓고 붙어다녔다. 도경수를 어떻게 한 게 변백현이 처음이라더라, 하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비마이너스와 에프. 게다가 센티넬과 센티넬. 떠들기 좋은 소재였다. 우리는 로미오와 줄리엣도 되었다가, 누구나 씹기 좋은 밑바닥의 이야기도 되었다. 도경수를 호시탐탐 노리던 녀석들은 내 서슬퍼런 기색에 발을 뺐다. 등급 차이가 곧 인간의 차이처럼 취급받는 곳이라지만 그런 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었다. 순수한 근력으로만 따지자면 별 차이도 없었다. 센터내에서 일정 수준의 이상의 능력을 사용하는 건 금지되어 있었고 나는 정말로 도경수를 건드리는 놈이 있으면 이를 악물고 지켜낼 생각이었다. 도경수가 원하지도 않던 흑기사를 자처하던, 행색만 그럴듯하던 마초들은 나를 꺾을 정도의 의지는 없었는지 곁에서 비아냥거리는 게 다였다. <야, 센티넬끼리는 섹스도 못하는 데 뭘. 도경수가 가이드만 되었어도 너한테 안 줬다.>


    도경수가 가이드면 어땠을까.


    그런 상상을 해보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어차피 아니므로 생각은 금방 접었다. 내가 가이드 여도 좋았을 것이고 도경수가 가이드 여도 좋았을 것이고 아무튼 좋기야 했겠지만은 이미 벌어진 상황은 둘 다 센티넬이니 부질없는 생각이었다. 그런 생각으로 깎아먹는 시간은 아까웠다.


    -백현아, 너한테만 말하는 건데.
    -응.
    -나 가끔 이상한 데로 떨어지는 꿈을 꿔.
    -이상한 데?
    -그렇잖아. 몇 년전만 해도 내가 여기서 이러고 있었을 줄 누가 알았겠어.
    -그렇지.
    -근데,


    -그 꿈에 이제 네가 나와.
    -…
    -그래서 내가 웃고 있어.


    스무 살을 앞둔 겨울이었다. 우리는 정말로 사랑을 하고 있었다. 걘 나한테만 기댔고 나는 걔가 나한테만 기대서 좋았다. 난 숨이 헐떡이기 직전까지 가이드를 찾지 않았고 꼭 그게 내 순정의 증거라도 된다는 양 자랑스럽게 여기고 다녔다. 숙소 배치를 몰래 바꾸어 도경수와 같은 방 안에서 잠든 적도 있었다. 센티넬 마다 각 파장이 있는 까닭에 깊게 몸은 섞지 못하고 해봤자 손바닥을 비비거나 짧은 키스를 하는 게 다였지만 그래도 좋았다. 평생 이정도만 해도 괜찮을 것 같았다.


    -야, 변백현. 너 준수 놈 돌아온 거 봤냐.
    -그게 누구더라.
    -아 미친. 니 머릿속에는 도경수 밖에 없지?
    -…응.
    -또 인정하고 난리야. 짜증나게.
    -박찬열도 좀 있어.
    -됐거든. 니 머리에 셋방살이를 왜 하냐. 내가.
    -그럼 쫓아낼래.
    -내 발로 나가는 거거든.
    -그래라, 고맙네. 너 나가서 이제 진짜 경수 밖에 없어.
    -아 재수없어. 하려던 말 까먹었잖아. 그래, 준수. 왜 그, 예전에 A++ 받았던 놈.


    <걔 완전히 혼이 빨렸던데.>


    장준수. 책상머리에서 공무원이나 다름없이 일하게 되는 대다수의 미래와는 다른 길을 걸어야만 했던 놈이었다. 어디에 차출되어서 비행기를 탔다느니, 그 능력이 대단해서 벌써 버는 돈의 스케일이 다르다더니, 하는 소문만 무성했다. 고만고만한 녀석들 사이에서 난 놈이었다. 아예 다른 클래스라서, 뒤따르는 시기와 질투도 별로 없었다. 그저 정말 그런 등급을 받는 사람이 있기는 하구나 하는 경이로움이 기본이었다. 녀석이 돌아왔다는 말에 다들 영웅담을 듣기 위해 몰려온 터였다. 무려 쁠을 두 개나 달았던 놈의 귀환이라니. 대단한 것은 당연하고 문제는 얼마나 대단할 것인가였다.


    찬열의 말대로 준수는 사람 꼴이 아니었다. 잘못하고 세탁기에 사람을 돌려도 저런 꼴은 안 나오겠다 싶었다.


    -다 믿지마, 낮은 등급이 최고야. 높은 등급을 받았다? 그럼 그건 그냥 지옥행인거야.


    준수는 영웅담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쉬쉬해오던 비밀을 폭로하는 고발자였다. 준수가 말한바로는 그랬다. 등급 검사 직전에 듣던, 가이드야 등급이 높으면 제일 좋지만 센티넬은 등급이 높다고 다 좋은게 아니다-는 말은 정말로 사실이라고. 등급 간 차별을 막으려고 형식상 하는 말이 아니라 진짜로. 여기서 그냥 업무나 보고 때를 기다렸다 능력이 희미해지면 밖으로 나가는 게 최선이라고. 전투 최전방에서 죽을 고비를 몇 번이나 넘겼으며 강대국에는 가끔가다 S등급을 받은 녀석들이 있는데 걸리면 진짜 죽음이라고. 쉽게 말하고는 있는데 정말로 스스로 목숨을 끊고 싶었다고. 내 몸에 흐르는 피를 다 빼버리면 능력도 사라지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해 본 적도 있어. 준수 녀석은 그렇게 울부짖었다. A++을 달고 자랑스럽게 웃었던 녀석은 돌아오자마자 F를 받고 낙제 신세가 됐다.


    눈치없이 내 등급에 감사해했다. 도경수의 F는 역시나 축복이었다.


    -경수야, 우리, 얌전히 살자. 서서히 꺼지는 불씨처럼, 능력이 바닥을 보일때까지.


    틈만나면 그렇게 약속했다. 쥐죽은 듯 센터에서 버티다가, 밖으로 나가는 거야. 이 좁은 유리 건물에서 벗어나서, 여름이면 땀을 흘리고 겨울이면 추위에 떨자.

     


    *

     


    -백현아, 내가 좋아보여?
    -왜. 누가 뭐라고해?

     

    -오세훈이 난 볼 때마다 좋아보인대.
    -그래서?
    -…짜증난대.


    오세훈은 도경수와 같이 들어왔던, 우리 또래의 센티넬이었다. 모름지기 센터 내의 센티넬은 서로 등급을 죄 알았다. 오세훈의 등급은 아무도 몰랐다. 고위 간부의 아들이라고 했다. 능력이 높아서 험한 임무에 차출될까봐 쉬쉬한단 소문도 있었고, 능력이 낮아서 센터내에서 무시 당할까봐 일부러 감춘다는 말도 있었다. 오세훈은 아웃사이더를 자청했다. 몇몇만 ‘엄선하듯’골라 말을 붙였다. 나에겐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걘 왜 너만 졸졸 따라다녀.
    -질투해?
    -응
    -뭐하러. 걘 그냥 내가 재밌대.


    <좋아하면 원래 뭐든 재밌는거야> 라고 하려다가 참았다. 오세훈은 기이할 정도로 도경수 주변을 얼씬 거렸다. 그건 도경수를 가시 달린 꽃 정도로 보던 녀석들보단, 걔의 일상이 궁금해서 잠 못들던 나와 좀 비슷한 행태였다. 도경수에게 그런 마음을 품는 걸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불쾌했다. 오세훈은 정기 훈련에 참여하지 않아도 벌에서 제외됐다. 고위 간부의 아들이란 소문이 말짱 헛것은 아닌가 보았다.


    -걔 능력은 뭐래.
    -안 그래도 물어봤는데, 되게 이상하게 대답하더라.
    -어떻게?
    -판타지 소설 1장처럼 얘기하던데.


    -나는 소문을 만드는 사람이야.


    오세훈의 능력 때문인지, 정말로 우리 셋을 필두로 한 요상한 소문이 센터를 휩쓸었다. 사람들은 우리를 삼위일체 라고 불렀다. 셋이서 꼭 한 몸 같다는 소리였다. 그러니까 도경수하고 변백현하고 원래 사귀고 있던 사이인데 오세훈이 끼어들었는데 그래서 달밤에 오세훈이랑 변백현이랑 치고 박고 싸웠다는 걸 본 사람도 있고 오세훈이 도경수랑 붙어 먹는 걸 변백현이 목격하는 바람에 완전히 난리가 났다더라-. 막장 드라마와 같은 전개에 나는 헛웃음 쳤다. 그동안 먼저 찾아가 본 적 없던 오세훈을 수소문해서 찾아 간 것도 그 때문이었다. 오세훈은 내가 저를 찾아올 줄 알았다는 듯 묻기도 전에 기함할 소리를 해댔다.


    -도경수를 여기서 내보낼거야.
    -…무슨 소리야 그게.
    -너까진 안 돼. 도경수 만이야. 섭섭해 하지마.
    -니가 무슨 자격으로 그런 말을 해.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볼게. 도경수 여기있다간 뒤져. 그래도 싫어?
    -말을 똑바로 해.
    -설명할 시간 없어. 도경수가 행복한 게 싫어?
    -…


    못된 놈이었다. 녀석은 내가 다른 대답을 할 수 없는 질문만 계속 했다. 도경수가 행복한 게 싫으냐는 물음이나, 도경수가 편하게 사는 게 싫으냐는 물음, 도경수가 죽는게 좋냐는 물음. 나는 정해진 대답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자초지종을 캐물어도 녀석은 그저 그런 의미없는 질문만 계속 할 뿐이었다. 나는 경수가 행복했으면 싶고 죽는 건 당연히 싫고 편히 살았으면 좋겠고 고작 쥐꼬리만한 능력을 가지고 있단 이유로 여기 붙잡혀 있는 게 가끔 눈물이 나고 마음이 아프고 되도록 빨리 경수가 바깥으로 갔으면 좋겠고…


    -그럼 됐네.
    -…
    -우리 뜻은 똑같은 걸로. 쌤쌤.

     


    *

     


    소문은 종결된 것처럼 보였다.

    셋 중이 둘이 사라졌기 때문에.

     


    *

     


    박찬열은 오세훈과 도경수가 사라지던 밤을 목격한 사람이었다. 그렇게 큰 불은 태어나서 처음 보았다고 말했다. 자기 능력의 한 열배가 되는 사람이면 그런 불을 부릴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의문을 품던 녀석은 아마도 그 정도 불이면 둘 다 죽었다고 봐야 옳다고도 덧붙였다. 아무렇지 않게 나에게 상황을 전달해주려고 애쓰는 녀석 앞에서, 나는 멍한 얼굴로 땅바닥만 쳐다보고 있었다. 사방이 어두웠다.


    <어두우면 빛을 켜봐>


    누군가 그렇게 속삭이는 것 같기도 했다. 하늘이 노랬다. 경수를 배신하는 것만 같아 이리저리 피해오던 가이딩이 화근이었다. 경수의 부재로 오갈 데 없는 정신이 육체마저 좀먹고 있었다. 본능적으로 느꼈다. 몸이 죽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삼위일체중 두명이 없어졌으니 그래, 나 역시. 도경수가 없다면 삶을 살아갈 필요 또한 없었다. 붙잡힌 몸으로 주제 넘게 도경수와의 미래를 꿈꾸었다. 언제가 되어도 상관없으니, 죽기 직전의 하루라도 상관없으니 자유의 몸으로 도경수와 바깥을 거닐고 싶다. 그렇게 생각했는데….


    <폭주>라는 단어는 누가 만들었을까. 센티넬의 이상 반응에 그런 거창한 단어를 붙인 건 누구였을까.


    -변백현!

     


    *

     


    -야, 변백현 너 죽다 살아났어.
    -변백현, 축하한다. 나라를 위해 큰 힘 한 번 써보자구.


    열에 아홉은 죽고 만다는 <폭주> 끝에 살아남은 내게 떨어진 것은, 비이상적인 시련을 견뎌낸 몸뚱이의 화려한 부활이었다. S등급 이라고 써진 종이가 팔랑거렸다.


    경수는 공중분해 되었고 나는 그가 선물한 지옥에 갇혔다.


    도경수. 왜 그날 밤 오세훈을 따라갔어. 거기서 뭘했어. 다들 뭐라는 줄 알아? 네가 도망친거래. 변백현을 두고 둘이 눈을 맞아 버리는 바람에, 나를 두고 떠나버린 거라고. 다들 나보고 불쌍한 새끼라고 해. 알아?

     

     


    그런데.

    경수 너.

    오세훈이랑 도망친 게 사실이라면,

    죽지는 않았겠다.

     

     

     


    까무룩한 정신으로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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