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티넬버스 세계관
*
-듣자마자 우는 노래는 제목을 모르는 편이 좋아.
-다시는 찾을 수 없게.
루머에게 들은 얘기를 떠올렸다. 남자의 얼굴이 그랬다. 듣자마자 울어버리는 노래의 제목을 찾은 얼굴. 그 노래를 계속해서 틀고, 또 틀고, 잠결에도 듣는 바람에 일상의 모든 순간이 슬픔이 되어 버린 얼굴. 순한 얼굴이지만 묘하게 서늘했다. 웃는 것과 웃지 않는 것의 간극이 큰 남자였다.
“가이드로 발현했다고 들었는데.”
“…”
“그것도 거짓말 인 줄 알았어.”
다 진짜라는 거네. 다 날아갔다고.
짧은 침묵이 지나갔다.
나의 종말을 두고 슬퍼하는 이를 처음 본 것도 아니었다. 그들은 얼마간 좌절했으며, 어느 정도는 내가 살아있음에 감사해했다. 그러니까 처음 조우한 순간만큼은 그들은 나의 존재 자체를 반갑게 여겼다. 남자는 달랐다. 남자에게 ‘나’의 존재 자체는 그리 큰 의미가 없는 것 같았다. 남자에겐 내 기억이 날아갔다는 사실이 더 중요해 보였다.
“…이름만 도경수인거네.”
빨리 인정해 주는 편이 좋았다. 기약 없는 기대는 사람을 병들게 한다. 남자는 깔끔하게 나를 정리했다. 후련하면서도 섭섭했다. 고작 스무해 살아놓고 이리도 한 일이 많을까. 사방으로 쏘다닌 과거의 나를 반추해 본다. 그때 너무 많은 기력을 쓴 탓에 이렇게 무기력해 진 걸까.
“난 변백현.”
“…”
“알다시피 센티넬. 능력은 빛이고. 등급은 뭐, 그 쪽 하곤 관계없을 테니까.”
“늘 허덕이는 신세야.”
“…”
가이딩이 모자라거든. 남자는 그렇게 말했고 나는 좀 다르게 해석했다. 주제 넘는 오역이었으나 답일 것이다. 도경수가 모자라거든. 나의 부재는 몇몇 사람들의 가슴에 구멍을 남겼다. 나는 그걸 채울만한 능력이 되지 못한다. 그러니 남자의 빈 가슴도 그대로 일 것이다. 반을 게워낸 나의 존재가 그러하듯이. 그걸 모르면 비극이었고 안다고 딱히 희극일 것도 없었다.
“김민석이 여기 와 있으래?”
“그러던데요.”
“…왜 존댓말이야?”
“저는 원래 친하지 않은 사람에겐 모두 존댓말을 씁니다.”
거짓말이었다. 나는 루머와 만나자마자 말을 텄다.
나는 <경수>를 아는 사람에겐 모두 존댓말을 썼다. 죄인이 된 심정으로 그들 앞에 서있었다. 존댓말은 예의라기보단 사죄의 표현이었다. 난 늘 조심하고 있어요. 당신들의 <경수>가 아닌 순간을 들킬까봐.
“그럼 앞으로도 계속 존댓말이겠네.”
“…”
“우리가 친해질 일을 없을테니까.”
거리를 두고 앉아있던 남자가 성큼 내 앞으로 다가왔다. 잘 빗어 넘긴 머리를 쓸어올리며 몸을 가까이 했다.
“어때, 가이드론 좀 쓸만해?”
“아직 등급이 안 나와서요.”
“센티넬일때는 영 쓸모없었는데.”
그게 그렇게 스위치 누르듯 바뀌기도 하는 건가.
“좋은 거 나오면 좀 빌려줘. 아마 불가능 하겠지만.”
“…빌려주다니요?”
“아, 아직 어떻게 가이딩하는지도 모르겠구나.”
남자의 눈은 좀 묘한데가 있다. 꼬리를 축 늘어 뜨린 맹수같다. 쉬운 기색을 폴폴 흩날리지만 실은 누구보다 인내심이 좋은 포식자 같은 눈.
“가이딩? 별 거 아니야.”
“…”
“만지고, 키스하고, 껴안고, 손잡고.”
“설마 사랑도 해야 하나요?”
“…무슨 소리야 그건.”
“말한 행위를 하는데 그런 감정까지 필요하냔 소리입니다.”
나는 누군가를 만지고 키스하고 껴안고 손잡는 사람이 될 순 있어도, 누군가를 절절히 사랑하는 사람이 되지는 못하겠지. 그런 예언을 감히 해본다. 어디에도 쉽게 사랑을 주지 않으리라. 남자의 얼굴이 일순 이제껏 구사하던 연극적인 표정에서 벗어났다. 처음 나를 봤을 표정과 비슷해졌다. 내 말이 그의 역린을 건드린 모양이었다. 남자가 불편한 표정으로 너풀거리는 옷가지를 쥐었다 폈다. 그가 뭔가를 참고 있었다.
“걱정하지마. 가이드는 그러지 않아도 돼. 문제는 센티넬이지.”
“…”
“파도치는 감각. 극한의 고통. 그걸 잊게 해주는 찰나의 손길. 센티넬은 가이드를 미워할 수 없어. 사랑하기도 쉽지.”
“당신도 그렇겠군요.”
나로 인해 비어버린 사람들을 생각한다. 나는 그렇다 치고, 그들 또한 나와 같을까. 나만큼의 허무를 등에 지고 있을까. 단 한번이라도, 스스로가 모두에게 사랑받을 수 없다는 확신을 내려본 일이 있을까. 모두에게 사랑받을 수 없기 때문에 아무도 사랑할 수 없다는 선언을 내려 본 적이, 있을까.
“…그럼.”
“난 가이드라면 모두 사랑할 수 있어. 한 사람만 빼고.”
그 한사람은 나겠지. 그렇지만 다행이다. 당신이 나와 같지 않아서. 한 사람을 빼고는 모두 사랑할 수 있어서.
“그거 다행이군요.”
내 말에 남자가 뭐라 대꾸하려는 찰나 숙소의 문이 열렸다. 여기까지 뛰어온 모양인지 김민석이 헥헥 거렸다. 내가 변백현과 붙어 있는 꼴이 소름끼치는 장면이라도 된다는 양 잠시 몸을 떨었다. 변백현의 답을 들을 새도 없었다. 김민석이 안절부절 못하며 나를 밖으로 이끌었다. 뻣뻣한 고딕체로 ‘인류 모두의 번영을 위해!’라고 적힌 플랜카드가 나부끼는 중앙 광장으로 와서야 내 손을 놔주었다. 얼마나 힘을 주었는지 손이 새빨갰다.
“걔랑 무슨 얘기 했어요?”
“딱히 한 말은 없는데요.”
“그러니까 그 딱히 중요하지 않은 그 대화가 뭐엿냐구요.”
“가이딩을 어떻게 하는지 하는거요.”
“미친, 걔랑 접촉이라도 했나요?”
상당히 기계적인 단어였다. <접촉>.
“시선 교환 정도는 했는데.”
“몸이 닿지는 않았구요?”
우연한 사고에 휘말려 경찰에게 진술을 하는 신세가 됐다. 누가 범인인지가 애매했다.
“그 사실이 저에게 중요합니까, 아니면 변백현씨 에게 중요합니까?”
“…우리 모두에게 중요하죠.”
들으나 마나 한 대답이었다.
중앙 광장 옆으로 비상 계단이 있었다. 잠자코 김민석을 따라갔다. 아까 검사를 받았던 곳이 대외적인 공간이라는 느낌이 강했다면, 지금은 센터 내부에 이런 곳이 있는지 아는 사람이 몇 없을 것 같은 비밀스런 공간이었다. 두꺼운 암막 커튼을 걷히고 들어가자 먼지 쌓인 기계들이 방치되어있었다. 김민석이 고물 덩어리 속에서 뭔가를 꺼내왔다. 센티넬-가이드의 감성은 다 이런식인가. 낡은 고철은 빨간 혀를 늘어뜨린 개의 모양을 하고 있었다.
“이번엔 뭐 이 혀라도 잡아야 하나요.”
“정확히 아셨네요. 워낙에 괴짜들이 많아가지고.”
“별나네요.”
“음. 아까랑 똑같아요. 이번엔 좀 더 쉽겠네요. 지금 느끼신 감정. 무슨 이런 괴상망측한게. 하는 그 표정.”
군데 군데 녹이 슬어 개의 혓바닥에 쇠독이 오른 것 같았다. 썩 내키지 않는 손길로 끝을 살짝 쥐었다.
“아 그리고. 하나 부탁할 게 있어요.”
“네.”
“저는 도경수씨가 이 테스트를 통과하지 않기를 빌어요. 경수씨도 그렇게 빌어줬으면 좋겠어요. 그 편이 경수씨한데 더 좋을 거예요.”
무엇을 비는 지도 모르고 빌었다. 딱딱한 쇳덩어리가 점점 축축해 지는 게 느껴졌다. 망해 버린 유적지의 랜드마크 같았던 모형에서 김이나기 시작했다. 좋은 신호인지 나쁜 신호인지 알 수 없었다. 테스트가 끝날 때까지 개를 놓지 말라고 했으나 더 이상 잡고 있기가 힘들었다. 진짜 개의 그것처럼 말랑말랑해진 혀가 손아귀를 빠져나가고 나서야 김이 걷혔다.
“아, 씨발.”
김민석의 욕설이 들렸다.
마법을 부린게 아니고서야. 사실 나는 가이드가 아니라 센티넬이었던 것이 아닐까. 무생물을 생물로 만드는. 헥헥 거리는 소리와 부드러운 털은 영락없이 살아있는 개 같았다.
“경수씨. 저 담배 한 대만 피고 올게요. 여기 있어요. 그 망할…개새끼랑 같이.”
*
“이야. 이거 완전히 국가의 영광아니야, 영광. 안그러냐 민석아?”
“…전혀요.”
“도경수씨. 제가 그 교육부장입니다. 이거 원. 진작에 인사를 드렸어야 했는데. 이렇게 대단한 가이드 인줄 모르고.”
김민석이 내게 주었던 고철 덩어리는 만든 후로 한 번도 쓰인 적 없는 물건으로, 비상식적으로(센티넬-가이드라는 존재 자체가 비상식이라지만) 높은 가이드의 능력을 측정하기 위한 도구였다. 기존 도구에서는 A부터 차례대로 측정이 가능하고, 간혹 쁠을 달아 A+나 A++인 가이드가 나오긴 했지만 모두 일정한 범위 내에 있었다. 최신식 가이드 등급 측정기를 한 번에 뻑 가게 만든 건 내가 처음이라고 했다. 아, 저도 봤어야 하는데. 빨간 줄 뜨는거. 그거 이론으로만 배웠거든요. 나에게 잘 보이려고 안달인 이 배불뚝이 남자가 연신 나를 칭찬했다. 그 개를 만든 사람도, 만들라니까 만들긴 하는데 평생 이 기계가 쓰일리 없을 거란 판단에 평소엔 하지 못할 온갖 장난질을 다 쳐놓았다고.
정말로 그 등급을 넘어선 가이드를 만나면 기계 쇳덩어리가 살아있는 개처럼 변하는 거죠.
개구리가 왕자로 변하는 것도 아니고.
엄청난 확률의 주인공이 되었는데도 썩 기쁘지 않았다.
“그럼 제 연봉이 제일 높겠네요.”
“연봉이요? 아 높다마다요.”
“그럼 전 누구를 가이딩 하나요?”
모름지기 센티넬이라면 나를 떠받들게 되는 건가? 나는 센티넬을 잔뜩 모아두고 성당의 신부와 같은 행색으로 가이딩을 베푸는 내 모습을 상상했다.
“아, 그런 건 아니구요. 마침 딱 경수씨를 필요로 하는 센티넬이 있어요.”
“교육부장님.”
“민석아, 좋게 좋게 가자. 변백현도 어쩔 수 없을 거야. 막말로, 맨날 가이딩 부족해서 여기저기 다리 걸치는 꼴 보는 것 보다야 낫겠지. 걔 불면증 갈수록 심해진다며.”
아,
변백현을 내가.
“그 우리 센터에, 변백현이라고. 미친 새끼 하나 있어요. 나쁜 의미는 아니고. 좋은 의미로다가. 능력이 어마어마하거든. 대한민국의 인재지.”
“아, 네.”
“물론 도경수씨도 이제 우리 인재고.”
부장은 잘 부탁한다는 소리를 남기고 떠나갔다. ‘변백현’을 잘 부탁한다는 소리인가 보았다. 난감한 표정의 김민석이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나를 응시했다.
나는 한 번 심호흡 했다. 이야기를 듣기 위한 준비자세였다.
“경수씨.”
“저와 변백현씨는 어떤 사이었나요.”
나는 새로 산 핸드폰의 전화번호부를 정리하는 사람처럼, 잠자코 그의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친구>아니면 <가족>아니면 <그냥 저냥 아는 사람>, 그것도 아니면.
“경수씨, 거침없으시네요.”
다시 실수를 하는 일이 없도록. <가족>을 <친구>로 착각하거나 <그냥저냥 아는 사람>을 <가족>으로 헷갈리지 않기 위해서.
“전 잘 몰라요. 제가 들어왔을 땐 이미 경수씨가 없었거든요.”
“…”
“변백현은 있었구요. 뭐. 경수씨랑 있었을 땐 그렇게 다정할 수가 없었다고 하는데. 글쎄요. 변백현이 한 사람에게만 충성하는 건, 좀 구전설화 같아서.”
“변백현씨는 제가 센티넬 이었다고 하던데요.”
“…걔랑 벌써 그런 얘기까지 했어요?”
그런 얘기는 물론, 나를 사랑할 수 없다는 얘기까지 하셨답니다.
“그것도 저한텐 구전설화 같은 얘기라. 그냥 한 귀로 듣고 흘리시는 편이 좋을 거예요. 뭐, 아주 대단한 이야기는 아니니까요”
글쎄. 사람이 입에서 입으로 이야기를 옮겨서 돌아다닐 정도면 얼마나 짜릿한 이야기 일지. 능력은 하찮았어도 여기저기 소문을 몰고 다니는 것 하나 만큼은 끝내주는 모양이었나 보군.
“지금 경수씨. 그러니까 나온 등급이…”
“S라면서요. 어나더 클래스. 대한민국에 단 한번도 내려온 적 없는 신의 가이드. 그야말로 은총. 불세출의 인재, 라고 방금 부장님께서 말해주고 가셨어요.”
“잘 기억하시네요.”
“잘 잊어먹기도 해요.”
“그리고 변백현은…”
“저와 비슷하겠죠. S?”
“아뇨, 등급이 문제가 아니라. 아마.”
“…”
“경수씨를 거부할 거예요.”
“…그런 건”
“…”‘
“너무 익숙한데요.”
익숙해지기 위해 발버둥 쳤더니 정말로 익숙해졌다. 내게는 모두가 사납게 헤어진 연인같았다. 사랑을 경험해 본 적 없으나 끝은 모두 이러할 것이다. 인간사에 무감해 진 뒤로는 모든 게 그저 비슷하게만 보였다. 거부당하는 일에 초연해 지는 방법은 나부터 앞서 모두를 거부하는 것 뿐이다. 한 톨의 애정도 내게는 필요치 않다는 것처럼.
언젠가부터 나에게 말을 걸길 꺼리던 사람들을 생각한다. <경수>와 비슷하지 않다는 이유로 외면받던 나날들. 그들은 결국 나를 포기했으나, 사람이 어떻게 포기가 된단 말인가. 게다가 나는 지극히 정상이었다. 인간 갱생프로그램에 출연할 정도로 비뚤어진 종자였으면 덜 억울했을 것이다.
“왜 그러는지는 안 물어보네요.”
“그것도 구전설화겠죠, 뭐.”
“뭐, 사연이 깊긴 하니까.”
“그 얘기를 다 들으면 변백현씨가 저를 거부하는 게 납득이 갈 정도로요?”
이유 있는 거부라고 거부가 아닌 게 되나? 그런 식의 변명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것도 익숙하네요.”
“…뭐가요?”
“저는 제가 하지 않은 일로 사랑받거나,”
“…”
“미움받는 것도. 익숙하거든요.”
김민석은 내 읊조림을 곱씹고 있었다. 내 불행이 그에게 동정을 산다는 게 반가운 일은 아니었지만, 나조차도 타인의 시선으로 날 본다면 그럴 것 같아서 가만히 놔두었다. 새로 만난 사람이 많았다. 모두가 <경수>를 알았다. 벽 한쪽의 스피커에선 뭔가 나오는 듯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했다. 주의를 기울여봐도 웅웅대기만 하지 도통 그 안에서 멜로디를 찾기가 힘들었다. 내 신경이 그쪽으로 쏠린 걸 눈치 챈 김민석이 멋쩍게 웃으며 설명을 보탰다.
“센티넬은 그 정도 볼륨이면 충분해요.”
지금, 노래 나오고 있어요. 하도 예민한 사람이 많아서 조용하고 느린 걸로다가.
내게는 웅웅대는 진동에 가까운 것이 누군가에겐 하루를 갈무리 할 만한 진정제가 된다는 것이 신기했다. 하기야. 식물도 음악을 들려주며 키우는 세상에.
자라나는 존재는 어떻게라도 배려 받는다.
그리고 나는,
불세출의 존재가 되어도
마찬가지구나….